| 저자 | 김선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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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 11
ㅡ 물집
내가 좁쌀 물집을 불러들인 이유 같은 건가
두 손 가득 물 무덤을 수백 개 매달고 일주일을 지냈어 눈에 입에 코에 구멍마다
물이 들어차는 것 같았어
무덤 속에 고인 물처럼 어떤 뿌리 같은 걸 키우고 있었지
잘은 모르지만 책임과 의무 같은 걸 거야 가난해도
지킬 건 지켜야 하니까
우리 가족은 오래전 무덤가에 살았어 옆구리에 큰 칼 대신 곡괭이를 하나씩 차고 밤낮으로 지켰지
무엇으로부터 지켜야 하는 줄도 모르고
엄마와 아빠와 누나들은 밤이면 힘줄 돋은 눈이 빨개져 툭 튀어나와 있었어
도깨비나 팔이 부러진 신(神) 같은 것인지도 모르지
자고 일어나면 닭들이 죽어 있거나 사라지거나 했으니까
내 몸은 그래서 무언가를 불러들이는 데 익숙해
피부 밑에 웅크리고 있다가 몸이 좀 아프거나 약해지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것들
그게 삶의 전부인 줄 알았거든 불러들이는 것, 물이든 불이든 천사든(악마가 올까봐 악마를 썼다가 지움)
그게 뭐든 지켜야하니까
우리 옆 가게는 며칠 전 젊은 사장이 갑자기 죽고
오늘은 타카질 소리로 벽을 타고 있어 말을 섞어본 적 없는 사람과의 대화 방식이니까 그러려니 해
며칠째 잘 가시라고 벽을 뚫는 드릴소리가 날 때마다 인사를 하고 있어
이 병은 암자에 가서 세 번 절을 하고 얻은 것이었어 누군가 핥아주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없어
인왕 3
길거리 화단에 회색빛 가루가 쏟아져 있어 아니 엎질러져 있어
한 무더기
무슨 재 같기도 하고 뼛가루는 아니겠지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 생각이 나 하얗지도 검지도 않은
낮과 밤 사이 어느 곳이었으니
모든 게 선명하지 않을 때였으니 어둠 속으로 묻힐, 사람이 엎질러지면
저런 모습일까
쓸어 담아볼까
손가락 사이로 빠지는 것은 남겨두고 양손으로 눈가루처럼 뭉쳐 던져볼까
아파트 불빛들이 하나씩 켜질 때마다
추워서 주먹을 꽉 쥔 사람들이 하나씩 나왔다 들어가고
해가 나면
그 자리에 눈 두 개 코 하나 입 하나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어

김선미 l
2009년 《시에》 등단. 시집 『마가린 공장으로 가요 우리』(세종도서 문학나눔 부문 선정)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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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호 공시사의 시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