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백진희 | ||
|---|---|---|---|
불가능한 사랑
사랑이 영원히 지속되는 순간은 우리가 서로에게 도달하지 않았을 때
화분이 꿀벌의 항문에 묻고 다시 암꽃에 앉는 것 꽃잎이 흔들리고 방울소리가 너에게만 들리고 이윽고 모가지가 떨어지는 것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어느 초원에 핀 풀꽃 하나가 가만히 입을 오므린다 나는 대롱에 꽃가루가 잔뜩 묻은 부전나비 멀리 가지 못하고 빨간 지붕 집 담장에 앉았다가 포충망에 붙잡히고 마는
아이가 뛰어가고 책가방 덜그럭거리고 그 뒤를 개가 쫓아 뛴다 꼬리를 흔들면서 멍멍 짖으면서
벚꽃 잎이 바람에 마구 흩어진다 이마에 손등에 네가 누운 이 풀밭에
붉은 꽃
회색 신전의 벽면에는 고총 속에서 시간이 멈춘 듯 입을 커다랗게 벌린 부조들 심장이 없는 사람들 마침내 영원한 고통을 얻게 된 돌 속에 갇힌 육신들
심장을 저며 꽃을 만들었다 꽃은 속이 텅 비어 있다
비 오는 날 꽃은 제 몸 열어 물을 긷는다 사슴이 주둥이를 꽃 속에 박고 홀짝홀짝 물을 마셨다 작은 꽃은 사슴의 혀끝에 닿아 흔들렸다
처음 맛 본 물 맛 세상에 태어나 처음 빛을 본 것처럼 눈이 부셨다 사슴의 주둥이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어디로도 퍼 올리지 못하는 얇은 물관과 투명하리만치 흰 실핏줄 꽃을 꺾는다 심장이 아려왔다
빈방에 꽃이 놓여 있다

백진희 l
2021년 《포엠포엠》 등단.
—
2022년 8월호 공시사의 시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