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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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최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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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낸곳 한국문연

출간일 2022년 4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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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시로 등단 한 이후 꾸준히 시작 활동을 계속해온 최금녀 시인의 신작 시집.

 

오형엽 평론가는 “최금녀 시의 서정성은 여타의 서정시와 두 가지 측면에서 구별되는 변별성을 보여준다. 첫째는 시적 주체의 감정 표현을 최대한 절제하는 것이고, 둘째는 시적 주체의 자기 성찰이나 세계와의 갈등 극복을 좀처럼 제시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기 성찰의 매너리즘에 매몰되지 않고 시적 품격을 지킬 뿐만 아니라 시적 밀도 및 강도를 강화하는 독특한 시적 기율에 의거해 독자적인 시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라 평하고 있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근원적인 인간의 기억에 근거하면서도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는 격조 높은 서정과 세련된 언어 구사를 통해 삶과 문학의 안팎을 지배하는 물리적 시간에 잠식되지 않으면서 생기와 깊이를 아우르는, 탄력 있는 시세계를 구축해 보이고 있다.

 

 

 

 

 

기억의 원리와 시적 환유의 방법

 

최금녀 시에서 회상의 대상인 과거의 경험은 유년 시절에 겪었던 피난지의 궁핍한 생활에서부터 학생 시기에 겪었던 낯선 문화적 체험, 성장 시기에 겪었던 인간관계의 굴절 등을 거쳐서 결혼 이후의 가족 관계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에 걸친 다채로운 파노라마를 보여준다. 따라서 이 과거의 경험을 회상하는 시적 주체의 현재 감정은 그리움, 애정, 후회, 미련, 미움 등 복잡다기한 스펙트럼을 가지면서 폭넓은 진폭을 가질 만도 하다. 그리고 회상의 대상인 과거의 경험은 대체로 현실과의 불화 및 타인과의 불일치로 인해 고난, 상처, 고통, 상실 등으로 점철되므로 자연과의 관계를 통해 자기 성찰을 시도하거나 세계와의 갈등을 극복하여 합일의 경지를 모색하는 시적 지향성을 제시할 만도 하다. 그러나 최금녀의 시는 스스로 마련한 시적 기율(紀律)을 통해 최대한 감정 표현을 절제하고 자기 성찰이나 세계와의 갈등 극복을 제시하지 않으면서 추억의 대상인 과거의 경험이나 상황을 객관적 거리를 두고 묘사하거나 진술하고 있다.

 

생략이나 비약을 감행하면서 과거의 경험을 객관적으로 묘사하거나 진술하는 시적 형상화 방식은 최금녀의 시가 회상에 의해 구조화됨에도 불구하고 통상적이고 범박한 정서적 표현이나 자기 성찰의 매너리즘에 매몰되지 않고 시적 품격을 지킬 뿐만 아니라 시적 밀도 및 강도를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 오형엽(문학평론가 · 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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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기는

다시 시작됩니다”

 

ㅡ 「시인의 말」 中

 

 

 

 

 

 

 

 

 

  불광동

 

 

 

  불광동은

  새로 산 신발처럼 불편하고

  조금씩 헐거워지고

  봄에도 눈이 질퍽거렸다

 

  발이 아플 때마다 마음이 아플 때마다 눈이 내렸다

  발이 아픈 곳에서 눈이 다시 시작됐다

  미끄러지는 발을 자주 씻었다

 

  생각은 밤거리에 있었고

  내 발은 눈 속에서 얼었다

 

  불광동에서 나는 사랑 시를 썼다

 

 

 

 

 

 


  풀독

 

 

 

  흰 구름 아래서

 새파란 풀을 죽였다

 

  꽃보다 풀을 더 사랑하는 남편이 잠들었을 때

  가만가만 걸어가 제초제를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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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들은 나에게 화를 냈다

  풀들은 거품을 흘리며

  “독해질 거야, 살아날 거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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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들은 죽기 살기를 하다가 정말 살아서 일어났다

  독보다 더 독한 독의 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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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은 풀들이 죽는 게 아니라

  잠깐 넘어지는 거라고 했다

  잠깐 눕고 싶은 거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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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들은 죽었다가도 햇빛 아래서 남편과 잘 지냈다

  한참 일하다 돌아보면

  어디선가 풀들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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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희들끼리 낄낄거렸다

  “괜찮아, 괞찮아”

​   다시 햇볕 아래 일어서서

  풀들이 더 크게 웃었다

 

  나는 풀독 속에서 잠시 황홀했다

 

 

 

 

 

 


  검은 구멍들

 

 

 

  몽골 들판의 구멍들

  내 가슴 사진에 찍히는 검은 별들 같다

 

  의사는 내게 시를 버리고

  구멍들을 안고 살라고 했다

  들여다보면

  구멍들이 새끼를 까놓은 듯

  큰 것 작은 것

  무서운 줄 모르고 반짝거린다

 

  찍어볼 때마다 더러워지는 나의 하늘

  낭종들

 

  몽골 여행의 첫날

  검은 구멍들을 버렸다

  볼펜들을 버렸다

  검은 별들을 모두 버렸다

 

 

 

 

 


  이상한 베란다

 

 

 

  내게는 베란다가 있다

 

  컵에 술을 채우고 물처럼 마셔도 취하지 않는 베란다가 있다

 

  아직 시를 써요? 베란다가 내게 물었다

 

  주머니에 두 손을 넣고 볼펜을 사고 산책을 하는 나에게

 

  누가 이곳에 의자를 놓았어

 

  멀리 온 것은 좋은 일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베란다에 앉았다

 

  매달릴 수 없는 베란다

 

  구름만 보이는 베란다

 

  유리컵에 술을 채우고 가는 베란다

 

  술을 물처럼 마셔도 취하지 않는 베란다

 

  그 베란다가 내게 물었다

 

  아직 시를 써요?

 

  질문보다 높은 곳에 있는 나의 베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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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ㅣ최금녀

 

1962년 《자유문학》 소설, 1998년 《문예운동》 시 등단. 시집 『바람에게 밥 사주고 싶다』 『길 위에 시간을 묻다』 외 6권, 시선집 2권, 일역시집 『その島を胸に秘めて』, 영역시집 『Those Pink Hands』 등이 있음. 〈공초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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