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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강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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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낸곳 포지션 | 출간일 2024년 3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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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詞林 001.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강인한 시인의 열두 번째 신작 시집.

이번 시집 『장미열차』에서는 60년대 후반부터 30년의 군사정부 시절과 민주화 이후의 역동적인 사회 변화를 거쳐온 시인의 여정을 두루 만나볼 수 있다. 등단 초기의 인간 존재에 대한 탐구를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한번 들여다볼(「새벽의 질문」, 「풍등(風燈)」) 수도 있으며, 영상 감각과 애상적 음악의 해조(「삼각해변을 달리는 개」, 「눈물」)를 느낄 수도 있다. 시력 40년을 넘어서면서부터 시인이 내놓은 시에 대한 정언은 단호하다. “시는 언어의 보석이다. 그 속에서 빛나는 것은 시인의 영혼이다.”라는 것. 그리하여 마침내 “나의 종교는 시다.”라고 시인은 선언한다. 그러한 그이기에, 시인은 37년간 중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2004년 2월 광주살레시오고등학교에서 명예퇴직하고 2002년 3월 다음(Daum) 카페 〈푸른 시의 방〉을 개설한 이래 2024년 현재까지 자신이 읽고 뽑은 좋은 시 12,800여 편을 소개하며 한국 현대시의 하나의 전범을 제시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현실에 바탕을 둔 사실주의에서 탐미적 에로티시즘을 넘어

 


[강인한 시인과 박성현 시인의 대담(2016. 3.18 서울 인사동)] 일부:

 

이가림 시인이 말했듯, 강인한 시인은“ 사물과 풍경의 배후에 감춰진 진정한 실체를 섬세하게 포착해내는 통찰력과 그 형상 능력”이 “빼어난 연금술사의 솜씨”에 비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인의 문장 하나하나는 우리 현대시의 깊고 진한 향기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의 정신은 초기와 중기를 관통하는 사실주의 시들과 후기의 에로티시즘까지를 아우르고 있습니다.

 

박성현 〈푸른 시의 방〉을 모르는 시인이 있을까요? (……) 홍신선 시인께서도 자신의 50년을 불교 용어인 법랍(法臘)이라는 단어를 빌려 ‘시랍(詩臘)’으로 압축하셨습니다. 선생님도 50년의 시력을 표현하신다면, 그 웅숭깊은 단어는 무엇일까요?

강인한 내 경우 내 시와 관련해서 그동안의 생각을 두 개의 문장으로 정리한 바 있습니다. “시는 언어의 보석이다.”라는 문장이 하나이고, “시 속에서 빛나는 것은 시인의 영혼이다.”라는 문장이 다른 하나입니다. 저 말은 그러니까 시에 대한 정의(定義)인 셈이죠. 뭐라고 해도 시는 언어를 재료로 하는 예술이라는 것. 그러기 때문에 언어의 여러 가지 속성(예컨대 음성, 의미, 지시적 형상 등등)이 시 안에는 두루 녹아들면서 예술로 익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그 시 속에는 시를 쓰는 시인의 진실한 정신이 박혀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세계와 의식이 부딪쳐서 포에지가 발생한다.

내게는 시가 그렇게 온다.”

 

ㅡ 「시인의 말」中

 

 

 

 

 

 

 

장미열차

 

 

 

부드러운 슬픔을 친구의 어깨처럼 기대고

그대는 나직나직이 울고 싶은 게지.

퀸 엘리자베스

장미의 이름으로 피어 있는 오늘.

 

겹겹이 여민 분홍 베일 사이로

향기는 흐른다. 오랜 옛날을

바로 어제처럼 기억하며

 

내가 타지 않은 열차를 떠나보낸다.

잠들지 못하는 그대에게

보내고 또 하염없이 열차를 떠나보낸다.

 

작은 장미 정원에서

밤마다 피고 지는 꿈

한 닢 두 닢 헤아리는 그대에게

오월에 떠나보내는 장미열차.

 

 

 

 

 

 


레다를 덮친 백조처럼

 

 

 

늦가을 아침 산과 나무 그림자가

강물 위에 제 낯을 비추며 기웃거릴 때

큰황새왜가리 외발로 섰다가

오그렸던 다리를 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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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걸음으로 나선다.

물 냄새가 바람에 실려 오고

수초 사이를 누비는 굵고 기다란 놈에

시선을 꽂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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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물고기들이 방향을 틀며

소란하다. 한순간

깃을 쳐 레다를 덮친 거대한 백조처럼

큰황새왜가리 훨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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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갯짓으로 바람을 일군다.

늠름한 이륙,

낚아챈 먹이가 부리에서 꿀꺽

목을 넘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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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가리 뱃속에 캄캄하게 갇힌 물뱀,

물뱀은 꼬리가 송곳

안 되면 될 때까지, 안 되면 되고야 말 때까지

송곳으로 찌르고 또 찔러라.

마침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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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뿜으며 죽어가는 왜가리 목덜미를 뚫고

우산 지붕을 받친 굵은 우산대,

혹은 신성한 사랑의 배설물처럼

드높은 허공에서

죽음을 이겨낸 물뱀이 떨어지고 있었다.

 

 

 

 

 

 


등화관제

 

 

 

밤의 장미꽃에서

화약 냄새가 난다.

 

등화관제가 시작되고

내 일곱 살의 하늘

비행기 소리, 무서운 맷돌 소리

 

밤

 

장미꽃

꽃이파리 떨어지는 어둠 속에

새빨간 호루라기 소리 한 가닥

똬리 튼 뱀처럼 눈뜨고 있다.

 

 

 

 

 

 


눈물

 

 

 

당신의 슬픔에는 바퀴가 달려 있지.

당신의 슬픔이 내 얼굴을

건너갈 때

나는 그 바퀴를 본 일이 있다.

 

아니다.

당신의 슬픔은 배,

당신의 슬픔이 내 가슴속을

안개처럼 헤맬 때

나는 그 파란 돛을 본 일이 있다.

 

당신의 슬픔은 아직 어려서

날지를 못한다.

내 온몸에 조용히 번져가고 있을 뿐

 

밝은 데서도 잘 보이지 않는다.

당신의 속눈썹에 맺힌

은빛

바이브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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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l 강인한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이상기후』 『불꽃』 『전라도 시인』 『우리나라 날씨』 『칼레의 시민들』 『황홀한 물살』 『푸른 심연』 『입술』 『강변북로』 『튤립이 보내온 것들』 『두 개의 인상』, 시선집 『어린 신에게』 『신들의 놀이터』 『당신의 연애는 몇 시인가요』, 시 비평집 『시를 찾는 그대에게』 『백록시화』가 있음.

〈전남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시와시학시인상〉 〈전봉건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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