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상/오선지 위의 시어들
 
오선지 위의 시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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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지상 
완결여부 연재중 

 

 

 

 

오선지 위의 시어들 15

— 신동호 「봄날 피고 진 꽃에 대한 기억」

 "나의 오월은 길었네 나의 오월은 길었네"

 

 

 

오월은 길다 비는 내리고 

스무 살의 밤길 

마주 닿은 어깨 위로 비는 내리고 

젖은 꽃잎을 밟으며 사랑은 

미처 꿈꾸지 못했다 

오월 때문이었다 비는 내리고 

마음의 모든 벽이 무너지고 

주춧돌처럼 남은 사랑만 

십여 년 동안 내내 낡아왔다 

오월만 되면 

마음속 허물어진 파편을 줍지만 

오월은 목련 같다 

빈터에는 옛사랑만 

꽃잎처럼 널브러져 있고 

주춧돌 한 귀퉁이는 깨져있고 

아직도 기둥을 세우려 들지 않았다 비 내리는 오월은 

영영, 그 모습 그 풍경 

바꾸지 않았다 

  

   

  아내의 새끼발가락이 부러졌다. 거실에 세워두고 관심 두지 않았던 소금 자루를 걷어찼다. 무심코. 순간은 무심했으나 통증은 온 신경을 곤두세워도 진정되지 않았다. 응급실행을 거부한 아내는 밤새도록 뒤척였다. 밤은 길었고 비 내리는 오월의 어느 날이었다. X-Ray 필름을 힐끗 본 의사는 무감각한 언사로 골절을 확인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치료 과정을 설명했으나 나에게 들어온 단어는 오직 ‘수술’이란 낱말뿐이었다. 아내가 수술을 단번에 거절했으니 우리가 이해할 만한 효과적인 설명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겠다. 어긋난 뼈를 맞추는데 마취를 하지 않는다는 걸 처음 알았다. 아내는 몇 번씩 까무러치듯 전신을 떨었으나 의사의 손길은 멈추지 않았다. 환자의 고통과 얼마만큼 거리를 둘 수 있는가를 의사의 능력을 판단하는 잣대로 삼는 듯한 그의 무표정에서 나는 일종의 자신감을 보았다. “마취 없는 외과 수술”이라고 적었던가. 1980년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으로 기관에 끌려갔던 시인 황지우가 겨우 살아 나와 적어낸 고문의 정의. 간단한 산수 공식을 가르치는 유치원 선생님의 상냥한 말투처럼 의사는 차후의 치료 일정을 설명했다. 병원의 절차는 간소했고 의사의 어투는 친절했다. 환자가 느끼는 통증의 깊이와는 무관하게.

  그날 밤도 아내는 쉬이 잠들지 못했다. 가끔은 짜증을 내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나의 가슴이 철렁거렸다. 어느 순간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한번은 심하게 짜증을 낸 일이 있었다. 짜증의 강도는 당연히 고통에 비례하는 것이었고 똑같이 아플 수는 없는 노릇이니 충분히 감내해야 마땅한 일이었으나 불쑥불쑥 돋는 화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아픈 게 벼슬이야?” “누가 그걸 걷어 차래?” “더 이상 어떻게 하라구. 내 다리도 같이 부러져 줘?” 따위의 유아적 상상을 내가 했다는 게 우스운 일이었지만 다행히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그런 못된 말이 표출되는 순간 우리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는 걸 모르는 바보는 아니다. 공동체의 관계에 있어서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별하는 방법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체득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적어도 정상적인 관계를 엮어왔고 지향한다면 더욱 그렇다.

  맹자는 인간에게 태생적으로 내재된 심성을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으로 구분해놨는데, 나는 그중에 으뜸을 측은지심(惻隱之心)이라고 믿는다. 한 인간의 사고와 행위 속에 연민(憐憫)이 있는가. 맹자가 소위 성선설을 주장하는 가장 큰 근거가 여기에 있다고 여기며 산다. 연민을 통해 공감하고 그 공감을 토대로 연대가 이루어지며 단단한 연대만이 공동체를 진보의 대열로 이끈다는 말은 강의 때마다 빼놓지 않는 나의 변함없는 신념이다. 맹자의 성선설을 꽤나 신봉하는 나는 어쩌면 “누가 가난하라고 종용했어? 가난이 벼슬이야?”부터 “누가 거기 가라고 했어? 누가 사고 당하라고 했어?” “누가 장애를 갖고 태어나라고 했어? 왜 남의 길을 가로막고 ××이야” 같은, 연민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기계적 인간들의 ‘불성실’을 경멸해 왔는지도 모른다. 타자에 대한 연민 없음을 넘어 비난과 조롱으로 일상을 사는 이들의 언사를 들으면서 화를 참아내기란 쉽지 않다. 맹자에 따르면 연민이 없는 자들의 말을 인간의 말로 들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 한강, 「소년이 온다」 중에서

 

  1980년 5월 27일 새벽 전남도청, 빗발치는 총성과 비명 그리고 17명의 죽음을 뒤로하고 겨우 살아나 생존의 아픔으로 평생을 사는 이의 고백이 무겁다. “왜 그날 도청에서 나오지 않았는가?” 같은 어리석은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간단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어느 누구도 당위라고 우기지 않을 긴박한 상황 속에서 목숨을 거는 행위조차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은”으로 설명하는 담담함이 양심이라는 말의 전부였다는 것을 나는 오월 광주에서 배웠다. “시민 여러분 계엄군이 도청으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지막까지 도청을 사수 하겠습니다. 우리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 그 밤 광주 시내를 카랑카랑하게 울렸던 방송을 들으면서 가슴을 뜯으며 밤을 새웠던 광주 시민들의 연민을 기억하면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라 생각한다. 결국은 살아남은 자의 비겁함을 평생의 수오(羞惡)로 삼으며 길었던 군부독재를 저항으로 살았던 광주의 양심이야말로 자유와 민주를 갈망하는 이들의 공감과 연대의 시작이었음을.

 최근에야 완전한 탈벅(스타벅스 안가는 일)을 선언했다. 갈 데가 마땅치 않아서, 또 선물 받은 상품권 아까워 두세 번 갔다. 대리점주는 무슨 죄냐 싶었고 집에는 텀블러가 두 개가 있었다. 선물 받은 상품권은 언제나 고마운 일이나 탈벅한 사람한테 스타벅스 상품권 주시는 건 이슬람교도에게 돼지고기 선물하시는 것과 같으니 참조 부탁드린다는 말도 전했었다. 이 말은 스타벅스의 당사자들이 비로소 인간의 언어를 말할 때까지 유효하다.

  스타벅스는 2026년 5월 18일 탱크 데이라는 이름으로 자사의 텀블러를 홍보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를 넣어 1987년 1월 군부 독재자들의 고문으로 목숨을 잃은 고 박종철 열사의 죽음을, 202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10주기에는 사이렌 머그잔 이벤트를 열어 세월호의 희생자들을 조롱했다는 의심을 샀고 전국적인 불매운동에 직면했다.

 

  신동호의 시집 『저물 무렵』을 탐독했다. 1996년이었다. 이십 대 청춘을 학생운동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살았던 시인의 성찰이 가득했다. 내가 겪었던, 그러나 표현해내지 못했던 시절의 순간들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이 시집에서만 다섯 곡의 노래를 만들었다. 이 시를 읽으며 오월의 비에 젖었던 나의 어깨를 다독였고 마주치는 술잔에 담긴 최루탄 냄새에 취했었다. 매년 열리는 전남도청 앞 오월 광장의 노래에서는 이 노래를 불었다. 〈나의 오월은 길었네 나의 오월은 길었네〉를 부르면서 울컥한 적도 많았다. 이 시를 통해 나는 희생하는 광주, 자유와 해방의 광주, 역사의 먼 길을 돌고 돌아 다시 민주의 꽃으로 환생하는 광주의 모습을 기억했다. 그리고 이미 46년 전 그날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던 연민과 양심의 도시 광주를 되새긴다. 오늘도 비 내리는 오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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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youtu.be/iF6RnAm_v6I?si=SAjurYNYuD5wT6QJ

  

 

봄날 피고진 꽃에관한 기억.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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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상  l

가수. 작곡가. 작가. 1991년 〈통일은 됐어〉 〈내가 그대를 처음 만난 날〉로 작품 활동 시작. 음반 《사람이 사는 마을》 《내 상한 마음의 무지개》 《위로하다 위로받다》 《기억과 상상》 《기억과 상상》 《그리움과 연애하다》 《나의 늙은 애인아》 등, 산문집 『이지상, 사람을 노래하다』 『스파시바 시베리아』 『여행자를 위한 에세이 北』 『대한민국 도슨트—포천』이 있음. 시노래 운동 모임 〈나팔꽃〉 동인.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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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호(VOL.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