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상/오선지 위의 시어들
 
오선지 위의 시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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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지상 
완결여부 연재중 

 

 

 

오선지 위의 시어들 14

— 이지상 시 「황혼」

 "날이 저문다고 모든 것이 저무는 건 아니니"  

 

 

 

 

고개를 들어라  

날이 저문다고 모든 것이 저무는 건 아니니  

이 완전하지 못한 세상에  

휴식이 되리  

 

서해바다 황홀한 일몰  

모든 이들의 안녕을 위해  

살아온 날들의 상처가  

살아갈 날들의 새살이 될 때까지  

고개 들어라  

황혼아  

  

   온다 간다 말 없는 것에 익숙치 않다. 마중은 아니더라도 손은 내미는 게 만남이고 배웅은 아니더라도 손은 흔들며 돌아서는 게 이별이다. 우리라고 치자. 우리가 만나면 얼마를 더 만나고 헤어지면 또 몇 번을 더 헤어지겠는가. 그 짧은 시간 동안 고작 몇 마디의 안부를 나누고 서너 번쯤은 웃었겠으나 그보다는 많은 시름에 쌓여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망설이다 결국 마땅한 인사도 없이 돌아서는 날이 얼마나 많았는가 말이다. 사는 날은 대개 그런 섭섭함을 외면하는 관대함이 필요했었다.

   비가 내렸다. 봄비였다. 온다는 말 없이 불쑥 찾아왔다. 청하지는 않았지만 탓할 일은 아니었다. 나는 천변의 꽃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있었고 고지를 하지 않은 봄비처럼 내게 온다는 말을 고지한 이는 없었다. 나의 어깨는 늘 말라 있었다. 후줄근하게 혹은 축축하게 라는 말을 중얼거릴 때가 되서야 비로소 안심이 되곤 했다. 비에 젖은 꽃 이파리 하나가 어깨 위에 떨어졌다. 촉촉하게. 꽃잎을 털어내는 일은 해서는 안 되는 금기이다. “안녕”하며 떠나는 꽃잎의 통보에 감사하며 배웅해야 할 의무가 나에겐 있다. 드디어 축축해진 어깨로 인해 꽃비로 흩날리는 꽃잎을 눈 맞추며 다시 걸어갈 용기가 생겼고 나는 다시 관대해지기로 했다.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지는 방법을 찾으세요.” 어쩌다가 던진 이 말이 그이에게는 상처가 되지 않았을까 몰라 걱정했던 잠깐의 시간이 있었다. 그이는 스스로를 비겁하다고 여기는 축이었다. 그의 비겁함은 나에게로 전이되고 나 또한 그의 비겁함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비겁함’이란 단어가 왜 나왔는지의 전개 과정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제 더는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거나 아프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을 것이고 죽게 하는 것들에 대한 분노와 아프게 하는 것들에 대한 격정적인 질타가 있었을 것이다. 레바논과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와 테헤란과 그리고 안녕이란 말도 하지 못한 채 생으로부터 돌아서야 했던 목숨들을 안타까워했고 전쟁을 일으킨 자의 비열함에 혀를 찼고 미사일과 고성능 폭격기의 무용담에 점철된 일상의 관심사에는 분개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다다라서는 더 이상 대화를 진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 그이가 선명하게 들려준 말이 있었다. “나는 너무 비겁한 사람인 거 같아요.” 연민이 가득했던 그 자리가 나는 좋았다. 연민은 관심의 시작이고 관계를 맺는 첫 단추이며 공감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첫걸음이니까. 공감의 광장에 들어서야만 연대의 틀이 생기고 세계를 진보의 단상 위에 올려놓는 가장 큰 힘은 연대니까. 그러나 그이의 자조 섞인 ‘비겁한 사람’이라는 말이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그이가 말한 문장의 주어 ‘나는’은 곧 ‘우리’가 되었고 함께 비겁했던 우리는 마땅한 대화의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지는 방법을 찾으세요.”라는 말을 그때서야 했고 그이는 몹시 궁금한 듯 다시 물었다.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지는 방법을 알려 주세요.” 나의 적절치 못한 조언은 무용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나 또한 갖지 못했으므로, 아파하고 연민하고 공감하지만 연대하고 싸우고 하여 끝내 승리하는 법을 익히지는 못했으니까. ‘적당한 갈망, 지나친 낙관’이라는 표제를 가슴속에 지니면서도 낙관은 지향일 뿐 현재일 수 없는 일상을 살며 나 또한 스스로를 강제하는 일에 익숙해 있었으니까.

 

  거리를 걸으며 보도블록의 선을 밟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는 것. 수시로 울리는 전화를 다 받아야 한다는 강박 또한 버리는 것. 사놓은 책을 다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도 버리는 것. 채 썰다가 수챗구멍에 떨어진 파 한 조각 다시 건져내는 습관을 버리는 것. 음식은 남기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과감히 버리는 것. 커피도 술도. 칼처럼 날아와 가슴에 콕 박힌 누군가의 말은 가소롭다 깔봐 보는 것. 술김에 뱉어낸 허튼 약속을 기억에서 지우는 것. 그래도 괜찮다고 여기는 것. 사람 없는 거리에선 가끔은 무단 횡단도 해보는 것. 약속에 경중을 두지 않는 것, 모든 약속은 중요하거나 그렇지 않으므로 반드시 지켜야 할 약속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어 보는 것. 앉은자리 앞에 노인이 서 있어도 꿋꿋이 눈감고 버텨 보는 것, “오늘은 양보 못 해.”라는 말로 하루를 살아보는 것. 빨간색 볼펜으로 자기의 이름을 크게 써보는 것. 그리고 먼 데서 온 소식은 그 거리만큼의 간격을 두는 것. 그렇게 해보는 것.

꽤 오랜 시간을 생각했지만 고작 너그러워지는 방법이란 질문의 답은 이 정도이다. 적고 보니 하찮은 것들. 하여 다음 생으로 미룰 것도 없이 꼭 이루어야 할 것들을 생각해 보기로 한다.

 

  라일락 꽃향기에 코를 가만히 대어 보는 것. 민들레의 홀씨 곁에 앉아 숨을 훅 불어 보는 것. 산수유와 생강나무를 한눈에 구별해 내는 것. 조팝나무와 이팝나무도 한 번에 구별해 내는 것. 새벽잠 자러 가는 나이팅게일의 울음소리를 알람 삼아 눈을 떠보는 것. 갯비린내 나는 해변의 일몰을 보러 서두르는 것. 그곳에서 한때는 그리웠던 이를 만나면 춤도 한번 추어 보는 것. 눈 녹은 물에 심장을 꺼내어 씻어 보는 것. 타이가의 숲을 지나온 바람에 몸을 말려보는 것. 호수를 비추는 별빛을 음표 삼아 노래를 불러 보는 것. 먼 곳으로 가는 기차를 놓쳐 보는 것. 그리고 내일의 일정은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잠들어야 하는 곳에는 발도 들여놓지 않는 것.

  

   그리워라 버찌의 계절

   내 아물지 않은 마음의 상처가

   거기서 비롯되었고

   행운의 여신 곁에서도

   내 아픔이 멎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난 버찌의 계절을 사랑하리

   내 가슴속 추억과 함께

   

  장 바티스트 클레망의 버찌의 노래(Le Temps Des Cerises)를 읊으면서도 파리코뮌이니 프롤레타리아니 하는 단어는 생각하지 않고,

 

   인생이여 감사합니다, 내게 너무 많은 것을 주었어요

   내 지친 발을 이끌어주어 나는 걸었고

   도시와 시골길, 해변과 사막, 산과 들

   그대의 집과 거리와 정원을 걷습니다

 

  비올레타 파라의 인생이여 감사해요(Gracias La Vida)를 부르면서도 독재, 매판자본, 민중, 혁명 같은 말을 떠올리지 않는 것. 그저 그 언어와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한 것.

 

  〈황혼〉은 철거민들의 쉼터 난곡의 낙골교회 전도사였던 김흥겸 형이 무척 좋아했었다. 80년대 민중가요 〈민중의 아버지〉를 만든 사람이다. 형과의 마지막 술자리는 1995년쯤 가을이었다. 속이 더부룩하다고 했다. 며칠 후 발병 소식을 들었다. 못된 암이었다. “날이 저문다고 모든 것이 저무는 건 아니니” 이 구절을 가장 좋아했다. 그러나 나는 “살아온 날들의 상처가 살아갈 날들의 새살이 될 때까지”를 더 좋아해야 한다고 강변했었다. “가난한 이들의 벗으로 절망의 시절을 가로질러 흥겸으로 해철로 살다간 아름다운 사람” 지금은 모란 공원에 잠들어 있는 고 김흥겸 전도사의 묘비명에 쓰여 있는 글이다. 발병 일 년여 후 그는 신촌 세브란스 병원 채플실에서 자신의 장례를 미리 치르게 된다. 천국을 마중하는 산 자의 담담한 이별식이었다. 언젠가 다시 형과 스스로에게 관대해지는 법과 노랫말에 대해 논쟁을 할 수 있다면 다시 우겨볼 생각이지만 형은 아주 다른 해답을 내놓을지 모른다.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스스로에게 너그러운 사람이다”라는 정답이 없는 명제를. 그러나, 우리의 두 구절이 다 정답일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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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youtu.be/qY_CjT4x-Bs?si=aZMiT66mSTSYAg1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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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상  l

가수. 작곡가. 작가. 1991년 〈통일은 됐어〉 〈내가 그대를 처음 만난 날〉로 작품 활동 시작. 음반 《사람이 사는 마을》 《내 상한 마음의 무지개》 《위로하다 위로받다》 《기억과 상상》 《기억과 상상》 《그리움과 연애하다》 《나의 늙은 애인아》 등, 산문집 『이지상, 사람을 노래하다』 『스파시바 시베리아』 『여행자를 위한 에세이 北』 『대한민국 도슨트—포천』이 있음. 시노래 운동 모임 〈나팔꽃〉 동인.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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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호(VOL.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