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이지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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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결여부 | 연재중 | ||
오선지 위의 시어들 13
— 이면우 시 「그 저녁은 두 번 오지 않는다」
무언가 용서를 청해야 할 저녁이 있다
맑은 물 한 대야 그 발밑에 놓아
무릎 꿇고 누군가의 발을 씻겨
줘야 할 저녁이 있다
흰 발과 떨리는 손의 물살 울림에 실어
나지막이, 무언가 고백해야 할
어떤 저녁이 있다
그러나 그 저녁이 다 가도록
나는 첫 한마디를 시작하지 못했다 누군가의
발을 차고 맑은 물로 씻어주지 못했다
가자미를 썰었다. 눈꺼풀이 없는 눈동자는 공중의 어딘가를 향해 있었다. 나를 보고 있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두툼한 대가리는 쉽게 썰리지 않았다. 내장은 엄지손가락의 한 마디도 채 되지 않았다. 이 작은 양으로 큰 몸을 움직여 왔다는 게 신기했다. 그것도 태풍과 해일의 바다를 견디면서. 꼬리 또한 유난히 단단했다. 칼이 쉽사리 들어가지 않을 정도였다. 파도가 끊이지 않는 곳에서 태어난 탓일 것이다. 곳곳의 지느러미는 모두 날카로운 바늘의 끝처럼 뾰족했는데 그리 위협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단단한 뼈와 지느러미는 조심을 해야 했다. 멀쩡한 가자미의 뼛속에 칼을 들이대면서 제 몸에 파고드는 상처는 경계를 주저하지 않는 나의 이중성에 피식 쓴웃음을 흘리면서.
“걱정 마, 색동옷 입히고 잘 삭혀서 고향 바다에 데려가 줄게.”
연민까지는 아니지만 약간의 미안함은 있었을 것이다. 그때마다 혼자 중얼거렸는데 어쩌다 너무 잔인한 말일 거라 생각할 때는 흠칫 놀라기도 했다. 약 80여 마리를 써는 동안 칼은 다섯 번을 갈았다. 칼에 힘을 주는 손목 부위가 욱신거렸지만 하찮은 통증이었고 손끝의 군데군데가 부풀어 오르기는 했다. 가자미 대가리는 몹시 가벼웠다. 그 안에 들어있는 기억의 무게를 재어볼 요량이었으나 가늠되지 않았다.
“요리사는 생명을 거두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생명을 바친 재료들에게 죄를 짓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요리하고 남김없이 먹도록 하는 것이 요리사의 의무입니다.”
한동안 빠져들었던 일본 드라마 〈그랑 메종 드 도쿄〉(2019)에서는 이 대사가 가장 좋았었다. 도마 위에 올려놓은 뭇 생명들에게 겁도 없이 칼을 들이대면 숨겨놓은 미안함을 상쇄시키기 위한 그 이상의 말은 없었다.
수북이 쌓인 가자미의 잔해를 모아 음식물 쓰레기 봉투에 담는 순간. 그 순간에야 떠올린 이름이 있었다. ‘샤자레 타이예베’. 선한 나무라는 뜻을 가졌다고 했다. 왜 토마호크(Tomahawk) 미사일은 그저 배움을 위해 등교에 나선 어린 소녀들이 머리 위에 떨어졌을까. 2026년 2월 28일 토요일 아침 10시 이란 남부 미나브 여자 초등학교에 미사일이 떨어졌다. 165명의 어린 소녀들이 현장에서 숨졌고 희생자는 175명으로 늘어났다. 이란 혁명 수비대(IRGC)의 오폭 가능성을 제기했던 미국은 미사일의 잔해가 토마호크로 밝혀졌다는 사실에 침묵했다.
저 총탄이 아이와 군인을 구별한단 얘기를 난 듣지 못했네
저 총탄이 우유 공장과 탱크를 구별한단 얘기를 난 듣지 못했네
총탄이 날아온 그 숫자만큼 꽃씨를 뿌려요 평화의 꽃씨를
총탄이 날아온 그곳을 향해서 노래를 불러요 평화의 노래를
저 포탄이 노인과 여자를 구별한단 얘기를 난 듣지 못했네
저 포탄이 군수 공장과 병원을 구별한단 얘기를 난 듣지 못했네
포탄이 날아온 그 숫자만큼 나무를 심어요 평화의 나무를
포탄이 날아온 그곳을 향해서 노래를 불러요 평화의 노래를
- 이지상 글/곡, 「나무를 심는 사람들」 전문
전쟁의 이유도 설명하지 못한 채 전쟁 개시 명령을 내린 자가 내뱉는 “대규모 폭격. 감당하지 못할 공격. 주요 시설 초토화‘ 같은 언사에 질려 TV를 끄고 살았다.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로 국제 유가가 상승하고 기름값이 치솟는 것을 걱정했고 매일같이 쏘아대는 미사일의 가격을 궁금해했고 원자재 공급 부족으로 인한 생활물가 상승에 불안했지만 나는 무감했다. 나의 거리로부터 수천 km는 떨어진 먼 나라의 이야기였으므로. 미나브 초등학교에 폭격이 있었던 같은 날 이란 남해안의 라메르드에 있는 한 운동 시설이 공습을 받아 배구를 하고 있던 10대 소녀들을 포함해 20명이 숨졌다는 뉴스를 들었고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사망한 레바논의 민간인이 1000명이 넘으며 그 전쟁으로 인해 100여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그중 37만여 명이 어린아이라는 뉴스도 들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슬며시 외면하거나 듣기 좋은 말들로 귀를 돌리면 되는 일이었다. 어쩌다 분노하지 못하는 내가 불편할 때가 있었으나 최소한의 연민도 없는 자가 최고의 권력을 차지했을 때 벌어지는 세계사의 한 단면으로 치부하면 그만이었다. 이런 장면을 어디 한두 번 겪어봤을까 하면서.
가자미의 잔해들을 차마 쓰레기봉투에 담지 못했던 그 저녁에 노래를 들었다. 묵직한 첼로의 선율이 좋았다. 용서하라는 말을 용서를 구하라는 말보다 열 배쯤 많이 들었던 때 불현듯 들어온 시였다. 노래를 만들면서는 작은 시골 성당의 저녁 종소리가 몇 번씩 가슴을 치는 아릿한 통증을 느끼기도 했었다. 비로소 용서를 떠올리는 저녁을 맞으며 가자미에게 내뱉은 약속 아닌 약속을 읊는다. 가자미의 잔해들은 따로 모아 매화꽃 향기가 파도처럼 출렁이는 오솔길 옆 텃밭에 뿌려 주기로 한다. 고향으로 가는 긴 여정을 함께할 수는 없으나 그 시작만큼은 지켜 주고 싶은 것이다. 가자미식해를 담그며 이제야 잃어버린 연민을 되찾은 날 다시 TV를 틀고 뉴스를 찾는다. 포연 가득한 폐허 속에서도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누군가를 위해 울분으로 기도하며 분노로 용서를 구해야 하는 저녁이 왔다.
■ https://youtu.be/JSBtz0qZKIM?si=7d09kqHDNCZrdZnn

이지상 l
가수. 작곡가. 작가. 1991년 〈통일은 됐어〉 〈내가 그대를 처음 만난 날〉로 작품 활동 시작. 음반 《사람이 사는 마을》 《내 상한 마음의 무지개》 《위로하다 위로받다》 《기억과 상상》 《기억과 상상》 《그리움과 연애하다》 《나의 늙은 애인아》 등, 산문집 『이지상, 사람을 노래하다』 『스파시바 시베리아』 『여행자를 위한 에세이 北』 『대한민국 도슨트—포천』이 있음. 시노래 운동 모임 〈나팔꽃〉 동인.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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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호(VOL.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