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이지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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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결여부 | 연재중 | ||
오선지 위의 시어들 12
— 김형수 시 「기다림의 시」
눈 내린 밤길 걸어
내 그리운 이 오는 소리 들린다
세상 저 끝에서
겨울밤이 이울도록 닿을 듯이
닿을 듯이
그 소리 들으며
나는 쓴다 푸른 혼을 뽑아
피가슴이 흙이 되고 꽃이 될 그날까지
내 마음의 눈밭에 기다림의 시를
간밤에 술 취한 한 사내의 굵은 눈물을 보았다. “형 왜 세상이 안 변해? 하나도 변한 게 없어.” 그는 삼십여 년 전 고국을 떠났고 중앙아시아의 한복판에서 한인일보와 고려문화원을 운영한다. 한국 사회와 고려인 그리고 중앙아시아인들 간의 원활한 소통이 그의 일이다. 더듬거리는 그의 어투에는 적당한 울분과 슬픔이 배어 있었다. 나의 대답은 순진했다. 나무도 계절도 바람도 나이를 먹는다. 하필 젊음이었던 지난날의 결기에 비해서야 나아진 것이 없겠으나 우리 또한 나이를 먹으니 그 시간을 버텨왔던 모든 삶들은 성숙을 위해 달려왔고 꽃피우지는 못했으나 뿌리 없는 날들은 아니었으니 그만하면 변한 것이 아닌가.
“아니 형, 그런 거 말고”
그는 내 말을 끊으며 과격한 손사래를 쳤다. 양손을 펼친 그는 칼처럼 펼친 오른손으로 왼손 가락을 자르는 몸짓을 했다. “내가 오랜만에 고향에 갔잖아. 초등학교 동창들이 술 한잔 먹자는데 그 애들 중학교 졸업하고 옥포조선소에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울산 공장에 간 애들이잖아. 한 놈이 술값을 낸다고 지갑 찾으며 장갑을 벗는데 손이, 손이 없어. 생각해 보니까 그놈이 장갑을 벗은 적이 없었어. 아주 오래전에 그랬대. 또 옆에 있던 놈이 웃으며 말하데. “난 발가락이 없는데.” 그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떨어졌다. 나의 대답은 그의 눈물에 견주면 지나치게 순진했다. 내란의 고통을 겪어냈고 나라의 중요한 회의가 생중계되는 것만으로 세상이 변했다고 단정했던 것이다. 천정부지 솟아오르던 집값이 떨어지고 바닥을 치던 코스피 지수가 치솟고 있다는 뉴스를 들으면서도 그랬다. 전에 없던 일이긴 했으나 주식 한 주 가지지 않았고 여전히 대출금 통장 잔액을 확인해야 하는 나와도 별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희망이란 현란한 새날의 기약보다 지난한 현재의 극복에 가깝다는 명제를 세워 놓고도 나는 여전히 막연했다. 담배를 피우러 나간 거리에선 초췌한 옷을 입은 초로의 여인이 멈칫대었다. 검은 비닐봉지를 내밀었고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4000원짜리 양말 하나만 사 달라고 했다. 현금이 없었다. 난색을 표하는 사이 여인의 표정은 더 궁색해졌다. 그만큼 간절했다. 어제부터 한 끼도 못 먹었다고 오늘도 굶게 생겼다고 했다. 현금이 없다는 나의 핑계는 그녀의 간절함을 이기지 못했다. 통닭 한 마리를 주문했고 그녀는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포장된 통닭을 들고 나가는 그녀가 잠시 멈추어 목례를 했다. 표정이 어땠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함께 초췌하고 궁색한 한 사내의 겨울에 뜻하지 않은 짧은 인연을 맺어준 그녀가 고마웠을 뿐이다. 자정을 향해가는 술집의 창밖으로 눈발이 날렸다면 나 또한 굵은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른다. 왜 세상은 변하지 않는 것인가를 탓하면서.
몇 년 만에 대학의 졸업식장에도 갔었다. 모든 게 좋았다. 양손 가득 꽃다발을 안은 졸업생들의 표정도, 축하의 말이 가득한 교정의 햇살도 그간의 수고를 고마워하며 내 머리에 학사모를 씌어주는 아이의 손길도 참 좋았다. 모두가 휴대폰을 들고 있었고 자기들만의 포즈를 취했다. 그 사이를 두툼한 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사진사들 몇이 있었다. 포트폴리오가 될만한 앨범을 펼치며 “사진 찍어 드립니다. 휴대폰 사진하고는 달라요!”를 외쳤으나 그에게 사진을 찍는 사람은 없었다. 그와 비슷한 사양의 카메라를 들고 있던 나도 그에게 사진을 찍어달라 하지는 않았다. 예보되었던 비는 내리지 않았다. 그는 그의 공친 하루를 변명해줄 아무런 이유도 찾지 못했을 것이다.
결혼을 했고 이듬해 아이가 태어났던 그해 였다. 단 세 곡의 연주를 위해 왼손에 클래식 기타를, 오른손에 베이스 기타를, 어깨 위로는 통기타를 메고 다녔던 어느 밤도 있었다. 녹음을 마치고 귀가하는 시간에 맞춘 듯 새벽 비가 내렸다. 장맛비였고 우산을 받쳐줄 도구는 없었다, 태워주는 택시도 없어 먼 길의 밤을 걸었던 그날, 달포 전 사두었던 시집을 펼쳐 들었었다. 소리를 낼 수 없으니 잠든 아내와 아이의 고운 숨소리를 운율 삼으며 머릿속으로만 선율을 그렸었다.
기다림은 희망이 될 수 있는가. 희망이 간절함의 고통을 어루만질 도구가 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고 아직도 그렇게 산다. 그러나 양자 간의 만남은 조우(遭遇)일 뿐, 어쩌다 한번 만나는 희망을, 그것도 먼지보다 작은 한순간들을 위해 마음을 빼앗겼던 대부분의 날들이 억울할 때도 많다. 다시 그러나 어찌할 것인가. 성취를 삶의 자양분으로 삼지 못하는 이들, 어쨌든 살아야 하는 의무를 지닌 모든 이들에게서 간절함으로 비롯된 희망이야말로 결국은 가장 현실적인 자양분 아닌가.
긴 겨울을 건너왔다. 어떤 이는 “천 원짜리 한 장 없이”(박형진, 「입춘단상」), 어떤 이는 “삶이 진창이었다면 죽음도 때로는 왈칵! 반가운 기별”(이중기,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인 세월을 견디며 넘어왔다. 같은 겨울을 용케도 건너온 나도 30년도 넘은 악보를 뒤적이며 노래를 불러보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기까지 왔으니 이만하면 변하는 것 아닌가, 하면서. 새싹 돋고 꽃피울 대지를 바라보며 지난겨울을 하얗게 덮었을 눈 내리는 밤을 생각하며 내 마음의 눈밭에 크게 써보는 것이다. “기다림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라고.
“나는 쓴다 푸른 혼을 뽑아
내 가슴이 흙이 되고 꽃이 될 그날까지
내 마음의 눈밭에 기다림의 시”.
서너 해 전 자칭 ‘분서갱유’를 했다. 좁은 집에 비해 책이 차지하는 분량이 많은 탓이기도 했으나 나의 배움이란 것이 고작 누군가에게 자랑하기 위해서라는 자괴감이 있었다. 저자들의 서명이 들어간 책이 많았던 것을 제외하고는 아쉬움도 적었다. 김형수 시인의 시집은 1995년 문학동네에서 나왔다. 내가 가졌던 책 들 중 비교적 고전에 속하는데 그 시집도 그때 보냈다. 시를 노래로 만들기 위해서는 일정 부분의 수정이 불가피하다. 하여 시의 원문을 찾아야 하는데 챗지피티에 제미나이의 시절인데도 원문을 찾을 방법이 없었다. 인용한 시는 2002년 발표한 나의 3집에 수록된 가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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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youtu.be/c811aKUUQO8?si=eGXvpzNh7lJh3D8x


이지상 l
가수. 작곡가. 작가. 1991년 〈통일은 됐어〉 〈내가 그대를 처음 만난 날〉로 작품 활동 시작. 음반 《사람이 사는 마을》 《내 상한 마음의 무지개》 《위로하다 위로받다》 《기억과 상상》 《기억과 상상》 《그리움과 연애하다》 《나의 늙은 애인아》 등, 산문집 『이지상, 사람을 노래하다』 『스파시바 시베리아』 『여행자를 위한 에세이 北』 『대한민국 도슨트—포천』이 있음. 시노래 운동 모임 〈나팔꽃〉 동인.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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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호(VOL.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