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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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상미 

여행가방 속의 꿈꾸는 새 모자

 

 

 

 

 

  너는 언제쯤 네 모자를 가져갈 거니? 네가 벗어놓고 간 모자를 볼 때마다 그 속에 네가 들어 있는 것만 같아 만지기도 전에 손가락부터 움찔움찔 뻣뻣해져 네가 벗어놓은 바지에도 티셔츠에도 팬티에도 너는 없는데 벗는 순간 네가 송두리째 빠져나가 다른 것들과 섞여버렸는데 모자만은, 네가 썼던 모자만은 끝까지 네 존재로 버티고 있는 것만 같아 섬뜩섬뜩 놀랄 때가 많아 어떨 땐 네 모자가 뚜벅뚜벅 내게로 걸어오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하고 의자 위에 있는 네 모자를 보고는 마치 네가 그 의자에 앉아 있는 것만 같아 깜짝, 소름이 돋을 때도 있어 도대체 네 모자에 무얼 집어넣은 거니? 설마 네 모자에 우리들의 추억을 몽땅 집어넣고 너는 다른 모자를 쓰고 유유히 떠나버린 거니? 우리가 함께 걷던 길보다도 우리가 함께 먹던 음식보다도 우리가 함께 즐기던 바람보다도 하늘보다도 공기보다도 더 가까이, 더 집요하게 내 곁에 붙어 있는 네 모자 빤히 눈뜨고 나를 감시하고 있는 듯한 네 모자 제발 부탁이니 이제는 네 모자를 가져가주렴 내게서 치워주렴 다른 건 모두 내 손으로 치우고 버렸는데 네 모자만은, 그 속에 네가 들어 있는 것만 같아 내 손으로 멀리멀리 창밖으로 훨훨 날려버릴 수가 없어 그러니 제발 네 모자의 질기고 못된 함정 속에서 나를 좀 빼내줘 나를 좀 자유롭게 해줘 추억은 수집품이 아니야 우리도 이제는 신발에 들어온 돌조각을 털어내듯 그 방에서 나와 가방을 싸고 그 속에 새 모자를 집어넣고 훌훌 떠나야 하지 않겠니? 여행가방 속의 꿈꾸는 새 모자가 되어 홀가분하게 아주 홀가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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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미
  부산 출생. 1990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모자는 인간을 만든다』, 『검은, 소나기떼』, 『잡히지 않는 나비』가 있음. 〈박인환 문학상〉, 〈시와표현 작품상〉 수상.

 

 


웹진 월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5.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