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 저자 | 조연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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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사건
골짜기 참나뭇잎들 하얀 김을 피워 올린다 산비탈에 내 지린내 스며드는 소리
聖과 性의 어느 핵심에 닿을 수 없는 배설의 소리
별들이 숲길을 내려다볼까 가릴 수 없는 허공을 옷자락으로 가리는데
빗방울 젖은 나뭇가지가 엉덩이를 훔치고 산새들이 구름에서 쏟아질 때
아차, 바람이 어깨를 쓸고 지나간다
바위도 자세를 풀고 쉬를 할 때
달빛에 비치는 바위엉덩이 얼마나 하얗고 얼마나 색스러울지
햇빛이 꽃물 든 혀로 핥고 핥으면 얼마나 진땀을 흘렸을지
벗은 아랫도리의 울음이 천연덕스럽게 지리고 천연덕스럽게 얼룩진 족적을 그리며 속수무책 흘러 내려갔다
죽은 산짐승들을 숨기고
살고자 퍼덕이는 들짐승들을 몰아가는 두렵고도 부끄러운 이 잡식성
오줌보가 잠시 후련하고 환했던 걸 깜박 잊어버렸다
눈발에 깨어나는 새벽 설산이거나
저녁 종소리 흩어지던 화계사 마당에서 올려다보았던 백운대 산봉우리이거나
은은하게 후끈거리는 우윳빛 사건에, 잘못한 것 없는 큰 잘못에, 턱 숨이 멎는다

조연향 ㅣ
경북 영천 출생. 1994년 《경남신문》, 2000년 《시와시학》 등단. 문학박사. 시집 『제1초소, 새들 날아가다』 『오목눈숲새 이야기』, 연구서 『김소월 백석 민속성 연구』가 있음. 경희대 등 강의.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7년 11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