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 저자 | 서윤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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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아 기린이
춥다는 건 곤경을 그리는데 좋은 도구라서
많은 여름이 겨울처럼 묘사되었고
우린 그곳에 서 있었지
기린을 보러 왔어
목이 긴
그날부터 우리는 각자의 기린을 마음에 넣고
사육을 시작했다
보고 싶은 기린을 키운다는 건
보랏빛 혀와 긴 속눈썹, 긴 주둥이, 엉거주춤한 자세…… 그러나 그것이 평화로움의 그대로인 걸
사막을 지나 다시 사막
여전히 사막이라서
더는 사막이라고 부르지 않게 되었다
기린을 상상하는 동안
기린을 이해했고
그때부터 마음속에서 키우던 기린은 죽어갔다
진짜 기린이 기다렸다는 듯이 뛰어오는 것도 모르고
떼를 지어 성큼성큼 온다
이상한 광경이지
기린이 달리는 모습은 서커스 같아서
질끈 감은 눈으로도 볼 수 있어
그러나 기린은 쉽게 지나친다
죽은 기린을 업고 서 있는 우리를
분명 기린을 보았으나 기린을 보고 왔다고 말할 수 없는 이야기들…….
창피했는데 이제는 말해볼 수 있는 그 믿음을
잎사귀로 먹고사는 기린이 심장을 핥고
속눈썹을 비벼도 간지럽지 않다
그건 분명 진짜였거든
사막이 계속되자 우리가 더는
사막이라고 말하지 않았듯이
우리는 한여름의 지나치기 쉬운 묘사로
종종 생략되었다

서윤후 |
전북 정읍 출생. 2009년 《현대시》 등단. 시집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 산문집 『방과 후 지구』가 있음.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7년 2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