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권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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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영영‧양양‧영양
ㅡ 한국 판타지 시 쓰기
영(靈)ː 그렇다면, 곰이다. 이 세계에서는 절대 생각할 수 없는, 아닌 사람이니까. 그 세계에서는 성립할 수 있는, 지속되는 오천 년이니까. 일관되게 비현실적인 이 이야기에, 지리산에서 서식하는 반달곰이 올해 13번 민가에 출몰했다는 이야기와 결합시켜, 이렇게 쓰자. 아닌 사람이 오천 년 동안 떠돌다 나타났다. 고라니 울음소리를 배경음으로, 도깨비불을 배경화면으로, 나타났다. 일정한 간격의 안개를 지나 일정한 간격의 터널을 지나 일정한 간격의 빌딩을 지나 일정한 간격의 다리를 지나 일정한 간격의 광장을 지나 일정한 간격의 주택을 지나 일정한 간격의 내 앞을 지나, 내 앞이다. 뭐지?
양(量)ː 뭐긴 뭐야. 13번이면, 징조야.
영영(永永)ː 곰. 생각해 보면 한국에 오천 년 동안 등장해왔던 인물이다. 곰. 생각해 보면 검으로 신을 뜻하였다. 아닌 사람. 생각해 보면 한국에 변하지 않는 판타지다. 마늘에서 은장도로 이어졌던 판타지. 과일 깎아 먹으려고 가지고 다니던 은장도를 정절을 지키려고 가지고 다니는 것으로 바꿔버린, 그 바뀌지 않는 판타지. 집 안에만 있는 천사와 악마(권박, 「마구마구 피뢰침」, 『이해할 차례이다』, 민음사, 2019)보다 한국적이니까, 그것에 대해 쓰자. 영영 죽은 아닌 사람의 영영 죽지 않는 모험을 있는 그대로 쓰자. 영 터무니없는 인과관계를 영(靈)하고 영(young)하게 쓰자.
양양(襄陽)ː 적합하다. 북한과 남한이 연결된 고성에서 지리산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보이는 곳. 난무하는 폐광을 지나 난무하는 은폐를 지나 난무하는 영생을 지나 난무하는 수련을 지나 난무하는 난동을 지나 난무하는 비문을 지나 난무하는 아닌 사람을 지나, 아닌 사람이다. 뭐지?
영양(營養)ː 뭐긴 뭐야. 한국 판타지 시야. 양판소인데 완성도 있을까 싶겠지만, 재미있으면 된 거지. 위험해? 냄새만 풍기는 게? 그냥 시처럼 재미없으면 읽지 않을 테니 정통성 없는 한국 판타지 시를 썼을 뿐이야. 없어 보여? 500원에 결제할 가치는 되지 않나? 문화는 침처럼 섞이고 입에서 위로 내려가고 내려가면서 소화되는 거잖아. ‘쿵쾅쿵쾅’거린다고? 쿵, 쿵쿵, 쿵쿵쿵, 클릭하는 당신들을 사전에 추가할게.

권 박 ■
2012년 《문학사상》 등단. 시집 『이해할 차례이다』가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