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사의 시선
 
공시사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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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해리 

   

  

 

 

                                                    

호수 컨베이어벨트

           

 

                        

 

  

  키질하고 남은 자리에 소복한 참깨처럼

  호수 가장자리에 물의 진심이 모여 있다

 

  겹겹 호수의 파동을 건너 건너

  간절함이 모여 부둥켜안고 있다

  국경을 앞에 두고 부둥켜안은 난민 가족처럼

 

  물이 무릎 꿇은 곳,

 

  경계를 넘지 못한 물의 마음 몇 점은

  수선화로 피어 흔들리거나

  외발로 선 왜가리가 가리키는 허공에 스며들거나

 

  그 많던 물의 진심이 순식간에 표정을 바꾼다

  거대한 호수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풍경들

  얼굴 없는 사람들이 서로의 등만 바라보며

  정박해 있는

 

  새를 증명하는 아침이 오지 못해 붓꽃 보라가 짙어지는데

  또 하나의 저녁이 오도 가도 못하고

  슬쩍 저 컨베이어벨트에 발을 올린다

 

  내일은 예감이 순해질 것이다

 

 

 

 

  

 

 

                                           

쥐가 출몰하는 밤  

                 

               

           

        

 

  쥐가 출몰했다

  쥐덫에 걸린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녀의 눈빛이 흔들리는 날은

  늘 쥐가 나타났다

  두려움이 밤을 머리끝까지 끌어 덮으면

  밤은 두려움을 발끝까지 내린다

  하얗게 질린 발이 쥐꼬리처럼 혀를 물고 죽어 있다

  흔들리는 눈빛과 쥐의 출몰은

  가위눌린 밤이 뱉어내지 못한 끝내 알 수 없는 알고리즘

 

  쥐가 출몰했던 대낮을 필사하던 가위 눌린 밤을 가위로 잘라낸다 핏기 없는 흰 발에 다시 피가 돈다 쥐가 쥐 잡아 먹은 빨강 입술을 한 발을 보고 달아난다 짧은 이력서를 흔들어대던 탁자들에게 찍 소리 한번 못하고 뒷걸음쳤던 그 문에, 쥐꼬리를 던져 주며 찍 소리 한번 내본다 내일은 쥐덫을 놓을 것이다 적극적으로 구체적으로 그리고 토끼가 출몰하는 꿈을 꿀 것이다 기적처럼 뻐꾸기와 꾀꼬리의 시간이 껑충껑충 올 것이다

 

  밤이 두꺼워져 밤 속에 밤이, 또 밤 속에 밤이, 밤이 많이 들어 있는 밤 그 밤 속에 낙타가 한 마리 또 한 마리 그 한 마리 뒤에 또 한 마리가 걸어 나오는 밤 사막이 뚱뚱해져 밤을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밤 눈알을 하나씩 빼고서야 가벼워지는 또 한 밤, 쥐가 출몰하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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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리  l

2002년 《주변인과시》 《대구문학》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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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호 공시사의 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