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김인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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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문건
나는 문턱 모서리가 죄다 헌 모슬포 선술집에 와서
탁자 위에 소주 한 병 시켜놓고
굵은 주름살 생긴 마음이 나무젓가락으로 멸치 안주를 집는다
집 건너 미역귀 같은 노을은 시든 장미꽃다발처럼 지워지고
휘청거리던 술잔 속엔
막 잡아 올려 파닥파닥 뛰는 숭어 떼 같은 기억 몇 줄이
정지화면으로 소주잔을 덮고 있다
또 한 개의 고독이 탁자를 넘어와서 몸속에 들앉는다
빗물자국으로 비밀번호를 걸어두었는데
왜 자꾸 숨어 들어오나
어묵 국물에 바다가 출렁이는 소주 몇 잔 홀짝홀짝 들이마시고
형광등에 기댄 어슬녘은 하나씩 밤을 늘려나간다
나는 덜컹거리는 고독을
시골 비포장길 위로 밀어내고 있다
밀어낼수록 쟁깃날 땅속 파고들 듯 솟아나는
이 지랄 같은 병, 고독
나는 기억 전부를 파낸 다음 수술 바늘로 촘촘하게 꿰매고
볼 위에 붉은 밑줄을 그어준 사람과
눈물을 보따리로 건네준 사람을
무등골 백 년이 넘은 구름 속에 묻고 있다
주모는 색감 좋은 거울 앞에서 불빛을 퍼올려 화장을 한다
나는 앞가슴 헐린 젖몸 사이를 슬쩍 끌어당기며
잎새주를 마신다
저어기 입술 뚝 내밀고 뛰어오는
평생의 짐, 고독
저녁 내내 소주 두어 병 시켜놓고
둥글게 접혀진 할미꽃처럼 턱을 괸 채 슬픔의 물줄기를 뒤집어쓰고 있다
통영
항구가 목이 쉰 채로
헐린 문짝 같은 내 청춘에게 따지듯이 오늘밤의 외상값을 묻고
국수처럼 부풀은 고독의 명암 뒤쪽에서 일생을 읽고 있다
고요만 커진 이 바닷가
수평선이 잘려나가고
다 깨진 안개가 해안선을 토해내고
저녁의 알몸과 파도의 온몸이 둘둘 말려
그래서 하루가 충만한
통영의 밤
물결그림자 옆의 연인네 수런대는 소리가
내 문턱 안으로 파고들어온다
전에 등짝을 눕혔던 모습과
열쇠를 채워 저물도록 보관해 두었던 몇 개의 장면까지
울음이 들어서
내가 보듬고 있는 통영
오늘은 이녁의 꽃내 나는 이야기도 뛰어들었다

김인석 l
1990년 시집 『목 타는 그리움』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피멍이 자수정 되어 새끼 몇을 품고 있다』 등이 있음. 〈광주문학 올해의작품상〉 〈매천황현문학상 본상〉 〈현대서정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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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호 공시사의 시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