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사의 시선
 
공시사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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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임경남 

   

  

 

 

                                      

 스웨터 가족

  

 

 

 

 

  병원을 다녀온 언니가 스웨터를 짠다

  언니의 손끝에서 구멍이 생겨난다

  휴일 하나 없이 달려온 날들이

  몸 안에 가득 퍼진 것이다

  언니는 스웨터가 아닌 구멍을 뜨는 사람

  나는 그녀의 구멍에 뛰어들 수가 없다

 

  퇴근한 남편이 스웨터를 짜고 있다

  회사 어디쯤에서 코를 놓쳤는지 스웨터를 짜다가

  길을 잃는다

  스웨터에서 사라진 남편이 스웨터를 짜고 있다

  내 코가 석자라며 아직 공부가 끝나지 않은 아들이

  반쯤 남은 실뭉치를 들고 문을 닫아걸어서

 

  오늘 밤은 천천히 지나가겠구나

  언니의 밤이 아들의 밤이

  스웨터 무늬처럼 지나가겠구나

  달맞이꽃 무늬로 격자창 무늬로

 

  헐렁한 러닝을 입은 아버지도 스웨터를 짠다

  저 스웨터 끝나고 나면

  30년 직장이 끝나고 통장 잔고도 끝나고 실뭉치도 끝날 텐데

  아버지 스웨터를 짠다

  온 가족이 스웨터를 짜서

  밤새도록 내 잠에도 스웨터가 생기고 스웨터가 풀리고

 

  아침 격자창으로 들어온 햇빛이

  거실 바닥에서 스웨터를 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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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남  l 

2005년 《문학예술》 등단. 시집 『기압골의 서쪽은 맑거나 맛있거나』(2022년 세종도서 선정)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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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호 공시사의 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