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박숲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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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바꼭질
거리를 뒤덮은 눈이
밤사이,
언니처럼 다녀갔어
그런 날이면 나는
언니처럼 자꾸 넘어지더라
집안 곳곳에 숨어 있던 언니
우리는 자주 숨바꼭질을 했지
크리스탈 유리잔을 튕기면 팅!
언니는 소리 내어 웃었어
은색 냄비 뚜껑 아래 숨은
언니가 두부처럼 으깨졌지
옷장에 숨겨진 언니를 골라
나와 내 아이는 언니를
걸치고 다녔잖아
식탁 위 하얀 접시마다
언니의 눈동자가 굴러다녔지
모른 척 입에 넣고 사탕처럼
혀로 굴리다 보니 꿀꺽,
나도 모르게 언니를
삼키고 말았어
그곳에도 꿈이 있을까
너무 자주,
나를 열고 들어오는 언니
손가락 마디마디 언니가 주고 간
뱅갈고무나무 진액이
잼처럼 끈적거려
강원도 산속 어딘가
언니가 머물던 곳을 집으로 옮겨왔지
언니가 찍힌 발자국마다
웅크린 새가 폭설에 파묻혔어
네가 오는 꿈을 꿨어!
발목을 휘감던 목소리
트리에 감긴 꼬마전구처럼
우리는 잠깐 반짝일 수 있었는데
그곳에선 빛도 소리도
언니의 마지막 크리스마스도
모조리 숨어 버렸지
폭설이 내리치면 집 안 곳곳으로
불어난 언니의 무덤이
발에 걸려 자꾸만 넘어지게 돼
곳에 따라 끝없이 쌓이는
언니의 웃음소리

박숲 l
2023년 《시와산문》 시, 《현대경제신문》 신춘문예 장편소설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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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호 공시사의 시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