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사의 시선
| 저자 | 권덕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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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의 순간이 길어진다면
1
읽던 책에 밑줄을 그을 때
밤마다 괄태충*처럼 스르르 몸을 말고 자던 당신이 떠올랐다
부정한 몸처럼,
누군가 너에게 몹쓸 짓을 했을까
단 하나의 순간이 길어진다면,
그건 온몸이 마음이고 온몸이 클라이맥스다
2
나는 나에게서 옮겨 가는 중
나는 조금씩 먼저 도달하고 조금씩 과거가 된다
잘 이해되지 않는 몸
처음의 나와 맨 뒤의 나는 같은가
생각 다음엔 무엇이 올까
그림자 아래로 긴 피가 흐르고 있다
3
그녀는 자기 체형이 마음에 들었을까
밤이 길다는 말을 당신에게서 배운다
나는 나에게 도달하기 위해
가만히 길어지는 생
4
뒤를 돌아본다
어떤 미의식도 없이
단지 하나의 이름으로 누워 있다
같은 방향으로만 태어나는
너를 기억해
밤이 되면 미끄러지듯 기어 나오는
너를 생각해
* 병안목 민달팽이과의 연체동물

권덕행 l
2019년 《월간시》 등단. 시집 『사라지는 윤곽들』, 산문집 『몇 겹의 마음』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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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호 공시사의 시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