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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조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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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낸곳 도서출판 도훈 | 출간일 2022년 3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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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의 서정 3.

 

197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조창환 시인의 시집.

이번 시집에는 코로나19가 세간에 몰고 온 충격과 공포, 그리고 그로 인해 빚어진 우리 시대의 음울한 삶의 조건들과 우리 삶의 자화상에 대한 비판 및 성찰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우리는 준비되지 않은 전쟁을 겪었고, 아직도 그 비바람은 진정되지 않은 채 계속되고 있다. 모두가 온몸으로 상처를 감수하며 버텨내는 이런 세계의 풍경과 현실을 시인의 눈은 밀착 카메라보다 더 깊고 내밀하게 조망해내고 있다.

아픈 상처를 덤덤히 드러내는 일은 감추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생명력 있는 진실이야말로 그 상처를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이다. 50년에 가까운 시력(詩歷)을 지나오며 깊고 특별한 시 세계를 구축해온 시인의 서늘하고도 온기 있는 시선이, 함께 이 시간을 건너는 독자들을 한껏 위무하며 생의 의미를 돌아보게 만든다.

 

 

 

 

 

 

멍든 세상 살아내기


 

나비는 허공을 흐르듯이 난다. 비틀거리면서도, 흔들거리면서도 제 갈 길을 간다. 연약한 존재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결코 중도에서 포기하거나 주저앉는 법은 없다. 우주도 그렇고 세상도 그렇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겉보기에는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터널 속을 헤매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길게 보면 그건 찰나의 고비일 뿐이다.

 

나비와 은하를 통해 조장환 시인이 제시하고자 하는 바도 이와 다르지 않다. 비록 현실은 어둡고 멀게만 느껴지지만, 바이러스는 우리를 굴복시키지 못할 것이다. 중간중간 비틀거리거나 흔들릴지는 몰라도, 우리는 결국 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우주 자연의 구성원으로 다시 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그것은 티끌만도 못한 작은 성취일지 모르지만, 그런 작은 성취들이 모이고 모여서 결국 지구의 역사를 형성한다.

 

 

― 김유중(서울대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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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죽는 일 모두 가을 물소리 같아

외지면서 푸근하고 애틋하면서 따사롭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기를 바란다”

ㅡ 「시인의 말」 中

 

 

 

 

 

 

 


 

염장이 강 씨 1

 

 

 

새해 첫날, 새 아침

염장이 강 씨 이야기를 신문에서 읽는다

누더기 같은 입마개로 코 가리고 입 가리고

백치처럼 침묵하는 팬데믹의 어둠을 헤쳐 나와

새해 첫날, 새 아침

붉은 해가 동쪽 하늘에 솟아오를 때

염장이 강 씨는 오늘도

죽은 이들의 식은 몸을 자루에 넣는다

의사도, 간호사도, 장의업자도, 친아들도

무서워 고개 돌리는 코로나 사망자

수의도 못 입히고 씻기지도 못하고

화장도 못해주니 염습이랄 것도 없지만

시신을 자루에 넣어 저승길에 보내는 일은

염장이 강 씨 몫이다

마지막 가는 길에 마누라 자식 얼굴도 못 보고

문상객도 못 만나고 영정사진도 못 내걸지만

그저 사정없이, 재빠르게, 화장장으로 보내주는 일은

염장이 강 씨 몫이다

험한 일 하시네요, 좋은 일 하시네요

마스크 안에서 누군가 웅얼거려도

염장이 강 씨는 방호복 안에서 진땀만 흘린다

그냥 하는 거예요, 누군가는 해야 하니까

저승길 간 사람은 강 건너가 천국이지만

염장이 강 씨는 강 건너기 전 천국에 산다

 

 

 

 

 

 


염장이 강 씨 3

 

 

 

고독사가 제일 불쌍한 줄 생각하지요?

그보다 포기각서 받은 시신은 더 안됐어요

오늘 염한 고인은 유족이 시신 포기각서를 쓴 분이에요

무연고 사망자는 상주도 조문객도 없어요

가난은 기본이고 유족이 시신 인수마저 포기하였으니

그 인생, 말 못할 문제가 있었겠지요

살아서도 잊혀지고 죽어서도 버림받은 존재예요

그래도 누군가는 장례를 치러줘야지 않겠어요?

나는 염할 때 시신에 화장(化粧)은 안 합니다

당사자는 모르는데 보는 이만 좋잖아요?

깨끗하게 잘 닦아 깔끔하게 보내드리는 게 좋아요

장례업자들도 반성할 게 많아요

입관할 때 노잣돈 달라 하고, 꽃장식도 등장했잖아요?

코로나 초기에는 운구차 비용을 세 배 넘게 불렀어요

위험수당이라지만, 돈 욕심 너무 내면 보기 안 좋아요

이런 일 왜 하느냐고요?

봉사만 하고 사니 얼굴빛이 편안해졌어요

봉사에 빠지면 섹스보다 무섭다는 말도 있잖아요?

나 죽으면 수의는 입히지 말라고 했어요

지금 입고 있는 잠바 입고 갈 거예요

이게 제일 편해요

저세상에서도 편하게 지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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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와 은하

 

 

 

여름날 오후, 하늘 캄캄해지고 후두둑 비 쏟아진다

​ 먼 데 하늘이 우르릉거리다가, 번쩍, 번개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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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방에 홀로 앉아 제미니 망원경이 포착한 우주 사진을 본다

​ 100억 광년 저쪽의 은하들이 목화솜 같다

​ 121억 광년 저쪽에 있는 퀘이사*에서, 깜빡 조는 듯한, 흰 빛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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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끄무레하고 안개꽃 같은 나선 은하

​ 흥분한 듯 불그스레하게 번져 있는 원반은하

​ 대질량의 별이 태어났다가 죽어 가는 밀집은하군 들여다보며

​ 숨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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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힌 숨 내쉬며 창밖을 내다보니

​ 비 그친 허공에 나비 난다

​ 나비는 비틀거리지만, 주저앉지 않는다

​

목화솜 같고 물비늘 같고 서산 갯벌 같은

​ 마스크 쓴 세상도 주저앉진 않겠지

​ 비틀거리면서, 흔들거리면서

​ 100억 광년 저쪽으로 막힌 숨 내보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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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퀘이사(Quasar): 블랙홀이 주변물질을 집어삼키는 에너지에 의해 형성되는 거대 발광체.

 

 

 

 

 

 


사회적 거리 두기 3

 

 

 

오래전부터 그대들과 나는 서로 떨어져 지냈다

나는 헛되고 허망한 미움의 상처에 감염되어

구름 낀 날 뒷골목을 쏘다니는 늙은 개처럼

퀭한 눈망울로 그대들의 마을을 비웃지 않았던가

그대들의 마을에는 탐욕과 욕망,

배신과 비방들이 홍수처럼 넘쳐났는데도

나는 그대들 마을의 아픔을 품어 안아

두 손으로 쓰다듬고 눈물로 어루만지기는커녕

어리석게도 구석진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킬킬거리고 손가락질하며

비웃지 않았던가, 조롱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살아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새삼스럽지 않은가, 사회적 거리두기라니

그대들과 내가 언제 가까웠던 적 있었던가

나는 안다, 내가 지금 받는 벌은

지난날 내 입에서 함부로 터져 나온

그대들 마을을 향한 조롱과 조소 때문이지

하찮은 바이러스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그러니 이제 나는 홀로 내 집으로 돌아가

별을 바라보며, 구름을 바라보며

숨어 지내려한다, 이것은

그대들의 사회가 내게 내린 명령 때문이 아니다

우리 삶의 허망함을 돌이켜보라고 하는

양심 때문이다, 양심의 명령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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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ㅣ 조창환

 

1973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빈집을 지키며』 『라자로마을의 새벽』 『그때도 그랬을 거다』 『파랑 눈썹』 『피보다 붉은 오후』 『수도원 가는 길』 『마네킹과 천사』 『벚나무 아래, 키스자국』 『허공으로의 도약』 『저 눈빛, 헛것을 만난』, 시선집 『신의 날』 『황금빛 재』 『황량한 황홀』 등, 저서 『한국현대시의 운율론적 연구』 『한국시의 넓이와 깊이』 『한국 현대시의 분석과 전망』 등, 산문집 『여행의 인문학』 『2악장에 관한 명상』 『시간의 두께』 등이 있음. 〈박인환상〉 〈편운문학상〉 〈한국시협상〉 〈한국가톨릭문학상〉 〈경기도문화상〉 등 수상. 현재 아주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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