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박제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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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달아실기획시집 16 | 안녕, 오타 벵가 | 박제영 시집

펴낸곳 (주)달아실출판사 출간일 2021년 9월 30일
달아실기획시집 16.
1992년 《시문학》으로 등단한 박제영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가끔은 잡문도 쓰지만 아직까지는 시가 가장 재미있어서 주로 시를 쓰고 있다”고 말하는 시인은 어언 등단 30년 동안 여섯 권의 시집을 펴낸 것이니, 5년에 한 권 꼴로 시집을 묶은 셈이다. 본인은 다작(多作)이라 하지만 과작(寡作)이라 해도 무방할 듯하다. 박제영의 시편들을 단순히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거칠게 요약하자면, “‘서사(敍事)와 사설(辭說)’이라는 뼈대에 ‘풍자와 해학’이라는 살을 입히고 있으며, 그 안을 흐르는 피, 즉 리듬은 판소리에 가깝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시편들은 신명난 한판 굿을 보는 듯, 마당놀이를 보는 듯, 혹은 시트콤을 보는 듯하고 그렇게 한바탕 웃으면 될 듯하지만, 그 뒷맛은 결코 유쾌하고 달콤하지만은 않다. 그의 시편들을 “서글픈 블랙코미디”라 부르는 까닭이다.
풍자와 해학이 서글픈 블랙코미디가 되기까지
풍자와 해학도 깊어지면 서글픈 블랙코미디가 된다. ‘안녕, 오타 벵가!’. 이 인사는 이미 세상의 모든 체위를 경험한 후 체념해버린, 웃는 듯 우는 듯한 자의 얼굴을 하고 있다. 이 시 앞에서 사람들은 어떤 표정을 지어 보일 수 있을까. 영화 <모던 타임즈> 마지막에서 여주인공이 ‘살려고 노력해봤자 무슨 소용이죠?(What's the use of trying?)’라고 묻는 장면처럼, 웃음은 도무지 웃음이 되지 않고 울음도 도무지 울음이 되지 않는다. 이 삶을 건드리며 시인 박제영이 서 있다. (……) 이번 시집에서 나는 「안녕, 오타 벵가」와 같은 해학과 풍자를 넘어선 서글픈 블랙코미디를 봤고, <장돌뱅이 우리 할매 술만 자시면 들려주던 옛날이야기> 연작에서 무당의 언어를 체험했다. 이 뚜렷한 성취의 양쪽과 그가 그간 일궈왔던 생활의 시들은 자연스레 섞여있다. 해서 그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예상하긴 힘들다. 30여 년의 시력과 의지들이 말해주듯 자신이 원하는 대로의 글을 써온 사내이기 때문이다.
― 민왕기(시인), 발문 부분
인간과 사회에 대한 희망과 전망이 닫힌 시대에 기존 제도와 가치는 의심과 전복의 대상이 된다. 시의 정체성도 예외는 아니어서 기왕의 시적 가치와 형식은 풍자의 대상으로 변한다. ‘시가 욕돼버린 세상’에서 ‘시는 개밥그릇이니 / 개밥그릇이라 먹다 남은 찬밥이 대부분이니’ 시인은 ‘비참’과 ‘비굴’을 견딘다. 그럼에도 시인 박제영은 고향 ‘春川’을 ‘靑春’으로 읽는다. 이 환유적 읽기는 그의 시들이 ‘청춘’의 간이역을 떠도는 맑은 영혼의 비망록임을 알려준다. 시인은 고향 '터주’이다. 그래서 시인의 비망록에는 ‘나비도아닌나방도아닌나비’ 같은 시혼들이 훨훨 날아다닌다. ‘춘천 터주’의 자유롭고 무위로운 혼이 움직이는 이 시집에는 유역민들이 전습해온 방언의 생명력이 생생하고 마땅히 지킬 도리로서 인심의 근본으로 돌아가는 ‘원시반본’의 그림자가 역력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 임우기(문학평론가)
귀명창이 판소리 한 대목을 듣고 깜작 놀란다. 동편제구나. 예상을 했지만, 중저음의 목소리가 대단하다. 걸쭉한 너스레가 허스키(수리성)까지 하다. 배꼽 잡고 웃다 보면 슬프다. 요즘 말로 웃픈 현실이다. 나는 30년 넘게 스산에서 살아, 내포지방 말을 거의 안다. 이문구 선생이 살아 돌아온 듯하다. 박제영은 한국문단의 특이한 존재, 현장에 누구보다 강하다. 그것을 장돌뱅이 할머니 버전으로 노래한다. 책상물림들은 그 냄새와 빛깔을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것이다.
― 유용주(시인)
"마침내 붕괴될 집을 또 한 채 지어놓고”
ㅡ 「시인의 말」, ‘사기(詐欺)’ 中
우금치
그때는 다 동학이었네라
누구라 할 것도 없네라
왕과 양반들 친일 모리배들 빼고는 죄다
남자고 여자고 애고 어른이고
조선 사람이믄 죄다 동학이었네라
저 무너미 고개 넘어 곰나루 돌아
우금치에서 다 죽었네라
몽둥이 들고 죽창 들고
왜놈들 신식총과 맞섰으니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네라
우금치 마루는 시체로 하얗게 뎊였고
시엿골 개천은 아흐레 동안 핏물이 콸콸 흘렀네라
준자 봉자 최준봉
녹두장군 모셨던 할배도 게서 죽었네라
니는 우금치가 낳은 씨알이네라
우금치를 잊으면 사람이 아니네라
봄날은 간다 5절
사랑도 미움도 세월 속에 늙어가더라
오늘도 손가락 꼽아보며
마침내 어두워진 황혼의 길에
울음 울면 웃자 하고
웃자 하면 울음 울던
한세월 엇박자에 봄날은 간다
다시는 오지 마라 봄날은 갔다
평론가들이 뽑은 올해 최고의 시
― 디스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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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도아닌나방도아닌나비를 찾아서
지금까지 밝혀진 나비보다 밝혀지지 않은 나비가 더 많다는데
그렇다면 ‘나비도아닌나방도아닌나비’도 있지 않을까
거의 모든 것에 관한 아무 것도 아닌 이야기
라고
정정해주는 당신들
당신들 때문에
울고
당신들 때문에
웃으며
나는 가네
당신들의 독한 뿌리와 연한 잎을 갉아먹으며
독하게 부드럽게 당신들을 먹어치우고
마침내 당신들을 넘어
거의 모든 것에 관한 아무 것도 아닌 이야기든
아무 것도 아닌 것에 관한 거의 모든 이야기든
나비도아닌나방도아닌나비를 찾아서
끝모를 그곳까지
나는 가려 하네

저자 소개 ㅣ 박제영
1992년 《시문학》 등단.
시집 『그런 저녁』 『식구』 『뜻밖에』 『푸르른 소멸』 등, 산문집 『사는 게 참 꽃 같아야』 『소통의 월요시편지』 등, 번역서 『딥 체인지』 『어린왕자』 등이 있음.
월간 《태백》 편집장 역임, 현재 달아실출판사 편집장.
■ E-mail : sotong@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