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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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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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낸곳 푸른사상사

출간일 2022년 8월 22일​

 

 


 

푸른사상시선 161.

1970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 《현대시학》 추천으로 등단한 박시교 시인의 시조집.

민족 고유의 문학 양식인 시조의 형식을 지키면서 예술성을 갖춘 작품들을 창작해온 시인은 이번 시조집에서도 큰 성취를 이루고 있다. 우리네 삶의 양상은 물론, 사랑의 감정과 사회의식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들은 깊은 감동을 준다. 박 시인의 시편들은 어려운 말이 없고 난해한 상징이나 비유 등이 없이 흔히 쓰는 말들이 시인의 마음속에서 시어로 푹 익어 나와 전혀 낯설거나 생경하지 않다. 그리고 짧다. 자신도 잘 모르는 말과 이야기를 한없이 끌고 가지 않아 짜임새 있고 구성지다. 무엇보다 시의 생명이랄 수 있는 리듬이 자연스레 살아 있고 이미지가 선명하다. 되풀이되어 드러나게 마련인 우리네 삶의 양상이 리듬을 타며 매양 최초의 것인 양 생생한 이미지로 드러나고 있다. 독자와 우주 삼라만상은 물론 신과도 감읍하고 소통하는 언어를 ‘시’라 한다면, 휴머니즘에 입각해 소박한 인간의 그리움을 펼쳐낸 것이 바로 이번 시집 『동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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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숫된 진정성의 힘

박시교 시인의 시를 읽으면 행복하고 풍요롭고 그러면서도 슬프다. 박시교는 시조 시인이다. 일찍이 가람이 시조 부흥의 뜻을 말했다. 시조는 민족 고유의 정서와 호흡을 지녀 힘이 있는데, 동시에 자유시의 예술적 감수성으로 경쟁해야 한다는 당부를 했다. 지금 박 시인의 시는 시조 정형의 내재율로 호흡하고 있는데, 그 숫된 진정성의 힘을 자유시에 보여주고 있다. 편하게 읽히면서 폭넓고 속 깊은 뜻을 들려준다. 행복은 그리움을 아는 데에 있다. 온전한 모습을 떠올리기 위해서는 “눈을 꼬옥 감는다”(「한 그리움에게」). 눈을 꼬옥 감는 것은 육체적 행동의 구체성이다. 정신이 없는 육체는 시신이지만 육체가 없는 정신은 유령이다. 오늘의 한국 시에는 허망한 유령의 시들이 너무 많다. 박시교 시인의 시에는 구체성의 꼬투리가 있다. 전철 스크린도어를 점검하다가 사고로 목숨을 잃은 김 군은 “컵라면 한 끼니도” 편히 못 먹고 세상을 떴다. 거듭되는 비정규직 젊음들의 고난과 죽음을 구해주지 못한 우리 모두는 죄인이다(「우리 모두가 죄인이다」). ‘우리’라는 말에는 피와 뼈가 스며 있다. ‘집단’을 넘어선 뜻이 있다(「우리」). 사람을 가리키는 속 깊은 뜻이다. 사람이 있어야 비로소 풍경이고, 사람이 있어야 온전한 세상이다. 곤궁해도 ‘사람 세상’을 안다면 그 자체로서 풍요이다.

 

― 구중서(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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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년을 넘기고도 몇 년째 이 길 위에 서 있지만

내 걸음은 언제나 느리고 가난하다.”

ㅡ 「시인의 말」 中

 

 

 

 

 

 

또 한세월 저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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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객(歌客)이 먼 길 떠났다

 

아호[白水]처럼 살았던 그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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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가얏고에 얹어 노래가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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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락 품어 안았던 진정한 한 가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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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 만의 무더위가 한풀 꺾인 팔월 그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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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은 바야흐로 가을을 재촉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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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랜 갈증 달래듯 단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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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령 너머 마을 감이 익는 동구 밖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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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그 발길 수이 떨치지는 못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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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그곳 가서라도 부디 노래는 잊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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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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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을 강원도 산골 학교 운동회 날

 

탕! 달리기 경주 신호가 울리고 저마다 일등을 하려고 힘껏 내달리던 아이들이 어느 순간 누구나 할 것 없이 멈칫멈칫한다. 웬일? 저만치 뒤처져 뒤뚱뒤뚱 힘겹게 달려오는 장애 동무가 가까스로 일행 무리에 다다르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 어깨를 겯고 하낫 둘! 하낫 둘! 함께 나란히 결승선에 들어섰다. 이 가슴 저린 광경을 지켜보던 모두들 박수 치고 와와! 함성 내지르며 환호와 감탄 연발

 

만국기 휘날리는 하늘 눈부시게 참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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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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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일에 무슨 답이 있을까 하다가도

 

그래도 다잡을 끈 하나쯤은 있어야지 싶어

 

마음에 매듭 하나 만들어 스스로를 묶는다

 

자신을 어떻게도 주체하지 못한다면

 

이 세상 어디에도 매이지를 못할 터

 

그 삶의 힘겨운 자리에 나를 묶어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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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시는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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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그곳에도 지금 눈이 오고 있나요

 

모든 아픔 감싸 덮듯이 겹겹 내려 쌓이는 눈

 

어머니

오늘 따라 당신 품 간절한 밤입니다

 

경상북도 봉화군 봉성면 원둔리

 

지아비 북으로 가고 혼자서 이겨낸 날

 

밤이면 눈 오시는 그 길 쓸고 또 쓸었지요

 

올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쓸었던 눈길

 

그 아픔 감싸주듯 밤새 내려 쌓이던 눈

 

어머니

그곳에서는 제발 눈길 쓸지 마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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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ㅣ박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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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현대시학》 추천 등단.

시집 『겨울강』 『가슴으로 오는 새벽』 『낙화』 『독작(獨酌)』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 『아나키스트에게』 『13월』 등, 공동시집 『네 사람의 얼굴』 『네 사람의 노래』가 있음.

〈중앙시조대상〉〈이호우문학상〉〈가람시조문학상〉〈고산문학대상〉〈한국시조대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