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김일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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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결여부 | 연재중 | ||
북극곰이 내린다
박화남
우산을 쓴 북극곰이 소나기로 내려요
처음엔 정장 입은 남자인 줄 알았죠
먹이를 찾는다길래
죽은 생선을 건넸어요
알죠? 으르렁대며 얼굴을 할퀴었어요
그들의 먹이란 게 빙하 말고 어딨겠어요
우리는 싱싱하지 않죠
죽은 걸로 사는 걸요
그들이 불어날수록 도로는 떠내려가고
지붕은 비를 피해 달아나기 시작했어요
한바탕 곰은 사라졌는데
내가 사나워졌어요
박화남 시인이 시조집 『북극곰이 내린다』를 펴낸 때에 네팔은 온통 물에 잠겼다. 모두가 우려하던 비극적인 일이었고 시인의 시조는 예언이 되었다. 2026년 8월 26일부터 뉴스들은 네팔 북부와 중국 접경 지역에서 발생한 대규모 홍수로 인해 수많은 사망자와 실종자가 발생한 참극을 보도했다. 영상으로 접한 히말라야 고산 지대 빙하의 붕괴 당시 모습은 큰 빙하와 암석이 무너지며 흙먼지가 계곡을 뒤덮고 ‘액체 콘크리트’ 같은 것이 거대하게 쏟아져 내리는 대홍수의 모습이었다. 순식간에 도로는 묻히고 마을은 떠내려가고 사람들은 달려가다가, 차를 타고 가다가, 버둥거리다가 그대로 진흙탕에 묻혔다. 2000년 전 ‘폼페이 최후의 날’을 가져온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 모습을 그대로 보는 듯했다.
「북극곰이 내린다」는 이 시조집의 표제작이다. 이 시조의 ‘북극곰’을 지구 온난화로 인한 재앙의 상징으로 읽어본다. 첫 수에서는 “우산을 쓴 북극곰이 소나기로 내”린다. 그 모습은 마치 “정장 입은 남자”처럼 보인다. “우산을 쓴”과 “정장 입은 남자”란 우산으로 그 공격성을 가린 모습, 점잖음을 가장하고 그 심각성을 드러내지 않은 모습이다. 그러나 그는 먹이를 요구한다. 그가 먹이를 찾는다길래 인간이 건넨 건 “죽은 생선”이었다. 둘째 수 첫 구 “알죠?”라는 건 그다음에 벌어질 일을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느냐는 동의를 구하는 질문이다. 죽은 생선이란 빙하를 녹게 하는 것. 자동차와 공장 등 산업사회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와 같은 온실가스, 지구가 더워질수록 사용량이 급증하고 있는 에어컨의 프레온 가스, 도시 개발로 인한 산림 감소, 산불, 데이터 센터의 막대한 전력 소모로 엄청난 온실가스를 배출시키는 생성형 인공지능, 플라스틱과 같은 쓰레기의 대량 생산 등 지구온난화로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들이다. 이 죽은 생선으로 인해 북극곰의 화를 북돋우게 된다. 북극곰은 둘째 수에서 이제 “으르렁대며 얼굴을 할퀸”다. 그들의 먹이는 빙하인데 우리로 대변되는 나와 너, 인간은 환경을 오염시키며 빙하를 녹이는, 즉 죽음을 만들며 사는 개체들이고 북극곰은 이런 우리를 공격하는 것이다. 결국 마지막 수의 종장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도로는 떠내려가고 지붕은 달아나고 한바탕 재앙 후에 지구는 더욱 황폐해지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이 시조는 현대 사회가 당면한 지구 온난화의 문제를 “북극곰”이라는 상징을 통해 간명하고 인상적으로 풀어내었다.
그 유리창에는 나무가 산다
유헌
새들이 자꾸 숲을 향하여 날아간다
숲을 찾아 숲의 반대 방향으로 날아간다
흙 한 줌 물 한 방울 없어도
나무가 자라는 숲
그림자를 좇아 눈 깜짝할 새 날아간다
청푸른 착시의 숲 신기루를 찾아서
가파른 거울 속으로 빗금 치며 날아간다
날아간 새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직벽에 가로막혀 날개 꺾인 새 한 마리
저 홀로 풍장을 치르고
숲으로 날아간다
숲을 찾아 날아가는 새들은 정작 “숲의 반대 방향”으로 날아간다. 자연의 반대 방향은 인공이다. 그래서 그 숲은 “흙 한 줌 물 한 방울 없어도 / 나무가 자라는 숲”이다. 그 숲에 있는 나무들은 실상은 나무의 “그림자”들. “청푸른 착시의 숲 ”인 것이다. 새들은 “눈 깜짝할 새” 그 “신기루”와 같은 착시의 숲, “가파른 거울 속으로 / 빗금 치며 날아간다” 여기서 거울은 숲이 비친 유리창이다. 유리가 만든 “직벽에 가로막혀 날개 꺾인 새 한 마리”는 떨어져 뼈가 부러지고 피 흘리며 저 홀로 바람에 풍화되는 풍장을 치른다. 영혼은 가고 싶어 날았던 진정한 숲, 진짜 숲으로 돌아갔을까.
이 작품 역시 환경파괴에서 파생되는 생태계 파괴의 일면을 다룬다. 국립생태원에 따르면 “건축물이나 인공 구조물의 유리창, 항공기 등에 부딪쳐 죽는 새들은 연간 800만 마리에 달한다”고 한다. 조류 충돌에 희생되는 우리나라의 “붉은배새매, 큰유리새, 멧비둘기, 딱새, 오목눈이, 박새, 솔새, 직박구리, 붉은머리오목눈이” 들은 유리창에 비친 산이나 하늘, 숲의 모습을 실제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이 시조는 생태계의 파괴 이면에 과연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가, 하는 삶의 문제를 묻고 있기도 하다.
위의 「북극곰이 내린다」와 「그 유리창에는 나무가 산다」는 각각 3수로 된 연시조이다.
평시조 한 편이 단편적인 감각을 보여준다면, 이를 여러 편 엮은 연시조는 한 편의 거대한 소설이나 대하 드라마 못지않은 문학적 깊이를 가집니다. 현대 시조 시인들은 연시조를 통해서 역사를 증언하고, 거대한 철학적 사유를 전개하며 시조의 문학적 영토를 끊임없이 넓혀가고 있습니다. (중략) 연시조의 가장 큰 아름다움은 단시조에 다 담지 못하는 깊은 시상과 내면의 변화를 수를 거듭하며 유기적으로 확장해 나가는 데 있습니다.
— 《시조튜브》, <문무학의 시조외전> 6강에서
연시조는 단시조가 2수 이상 연결되어 하나의 제목 아래 구성된 시조이다. 각 수의 내용은 유기적으로 구성되며 수가 거듭될수록 확장된다. 단시조가 순간의 감정을 포착하되 상상의 공간, 여백을 많이 두는 것이라면 연시조는 서사의 확장을 가져올 수 있는 형식인 것이다.
크릴 오일
정희경
엄마 펭귄 입속 깊이 어린 부리 넣는다
심해가 토해내는 몇 방울 붉은 크릴
미끈한 캡슐 한 알이 목에 걸린 이 아침
“크릴 오일”은 “남극해 먹이사슬 최말단에 속하는 ‘크릴’이란 새우 모양의 동물성 플랑크톤에서 추출한 기름이다. EPA, DHA 등의 오메가3 함량이 매우 풍부하고, 특히 일반 생선 기름에서 얻는 오메가3 지방산보다 인체 흡수율이 탁월하여 건강보조식품으로써 인기를 모으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생산 과정에서 크릴의 남획으로 남극 생태계에 큰 악영향을 준다. “남극 먹이사슬의 뿌리, 크릴새우 80%가 사라지고 크릴의 남획으로 인해 고래나 펭귄의 먹이가 줄어들고 남극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새끼 펭귄은 “엄마 펭귄 입속 깊이 어린 부리 넣”어 “심해가 토해내는 몇 방울 붉은 크릴”을 받아먹는다. 아마 화자는 영상 등을 통해서 그러한 모습을 익히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새끼 펭귄의 먹이인 그 몇 방울 붉은 크릴이 사람이 먹는“미끈한 캡슐”에 담겨있다. 종장은 “미끈한 캡슐 한 알이 목에 걸린 이 아침”이다. 미끈한 캡슐이라서 목에 잘 넘어갈 듯한데 “목에 걸”렸다는 것에 이 시조의 무게중심이 실려 있다. 그런 메시지를 전한다. 중장을 사이에 두고 초장과 종장의 그림이 겹쳐 보이는 대조를 이루고 있다.
도시 비둘기
옥영숙
떠돌이 도시 건달
사람들과 걷고 있다
촌스러운 회색 정장
전통인 양 갖춰 입고
평화를 콕콕 쪼면서
흘린 빵에 잇는 목숨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대홍수 후 감람나무 가지를 물고 노아의 방주로 돌아와 홍수가 끝났음을 알린 뒤부터 지금까지 핵무기 반대 운동 등 평화·반전 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그 평화의 현재는 “흘린 빵에”“목숨”을 “잇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누가 먹다 흘린 빵부스러기를 쪼아 먹으며 겨우 목숨을 부지하는 평화의 모습. 그 평화는 “촌스러운 회색 정장 / 전통인 양 갖춰입”었다. 가문의 명맥만 겨우 유지하고 있는 영락한 시골 선비가 낡은 단벌 양복을 입고 그나마 남아 있는 자존심을 세우는 모습과 같지 않은가. 그러나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누구의 관심도 끌 수 없는 “떠돌이” “건달”인 도시 비둘기이다.
코맥 매카시(1933-2023)의 장편소설 『더 로드 THE ROAD』(정영목 역, 문학동네)는 죽어가고 있는 세계, 지옥의 지구를 보여준다. 죽어서 가는 지옥이 아니라 살아서 가는 지옥인 것이다. 이 작품은 대재앙 이후의 지구에서 길을 떠나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이다. 삭막하고 쓸쓸하며 황폐한 지구의 풍경이 끝없이 이어진다. 문명이 파괴되고 거의 모든 생명이 멸종한 지구에는 하늘을 떠도는 재에 가려 태양도 보이지 않는다. 추위와 굶주림에 떨며 그러나 아버지와 어린 아들은 희망을 찾아 길을 걷는다. 아버지와 아들은 바다가 있는 남쪽을 향해 나아가지만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왜 그곳으로 가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아버지는 “우리는 불을 운반하는 사람들이다”라고 말할 뿐이다.
남자는 배낭을 등 위로 추켜올리며 황폐한 땅을 건너다보았다. 길은 텅 비어 있었다. 길 아래 작은 골짜기에는 움직이지 않는 잿빛 뱀 같은 강이 있었다. 어김없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강변에는 죽은 갈대들이 짐짝처럼 쓰러져 있었다. 괜찮니? 남자가 물었다.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그들은 암회색 빛 속에서 아스팔트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발을 질질 끌며 재를 헤치고 나아갔다. 서로가 세상의 전부였다. (p10)
어둠이 그들을 덮쳤다. 곶의 좁은 길에 이르렀을 때 이미 너무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먼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다. 사방에서 풀이 쉭쉭 소리를 냈다. (……) 계속 가야 돼. 가자.
안 보여요.
알아. 그냥 한 번에 한 걸음씩 가면 돼.
네.
손 놓지 마.
네.
무슨 일이 있어도.
무슨 일이 있어도. (p.264)
결국 아버지는 죽고 아들은 조력자들을 만나 여행을 계속한다. 죽은 아버지의 기억을 간직하고 그 손을 놓지 않은 채.
사람이 좀 더 편하게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자연과 생태계가 파괴되어야 하는가? 지구 온난화와 생태계 파괴가 아니라도 늘 지구는 인간의 욕심과 갈등과 이기심으로 전쟁에 불타고 있거나 시한폭탄처럼 전쟁의 조짐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모두 평화의 대척점에 있고 그 바탕에는 틀림없이 ‘경제’라는 변명이 있다. 혼자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다른 이의 평화를 파괴하는 속물들은, 한 나라가 더 풍족하게 살기 위해서 다른 나라의 평화를 무참히 짓밟는 독선자들은 그 황폐함 속으로 걸어가기를 멈추지 않는다. 사람의 통제를 벗어난 AI의 출현 가능성을 염려하는 두려운 『THE ROAD』의 미래를 향해 우리는 언제까지 여행을 계속할 수 있을까? 아버지인 신의 기억을 공유한 조력자들을 만나 미래로 불을 운반해 갈 수 있을까?

김일연 l
1980년 《시조문학》 천료. 시조집 『빈 들의 집』 『서역 가는 길』 『저 혼자 꽃 필 때에』 『달집태우기』 『명창』 『엎드려 별을 보다』 『꽃벼랑』 『아프지 않다 외롭지 않다』 『너와 보낸 봄날』 『깨끗한 절정』 『향긋한』, 시조선집 『먼 사랑』 등, 일역 시조집 『花の崖(꽃벼랑)』, 영역 시조집 『All The Daughters of The Earth(세상의 모든 딸들)』, 동화집 『하늘 발자국』, 시평집 『시조의 향연』이 있음. 〈한국시조작품상〉 〈고산문학대상〉 〈한국단시조작품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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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호(vol.1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