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김민정, 에밀리 선, 신용목, 알리 알리자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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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nection, acrylic on canvas, 130x130cm, 2023. © Stonie Kang, Used with permission.
Invisible walls,
‘보이지 않는 벽’을 넘어


김민정
약력:
1976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을 수료했다. 1999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아름답고 쓸모없기를』『너의 거기는 작고 나의 여기는 커서 우리들은 헤어지는 중입니다』, 산문집 『각설하고,』가 있다. 박인환문학상, 현대시작품상, 이상화시인상을 수상했다. 2016년 호주에서 3인 번역 시집 Poems of Kim Yideum, Kim Hangsook & Kim Minjeong(Vagabond Press), 2020년 미국에서 번역 시집 Beautiful and Useless(Black Ocean)이 출간되었다. 현재 문학동네 시인선의 총 책임자이자 문학 전문 출판사 <난다>의 대표이다.
Links / 링크:
http://granta.com/two-poems-kim-min-jeong/
http://aaww.org/ill-do-what-i-want-a-conversation-with-kim-min-jeong/
반투명
스스로가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눈으로
그가 벽시계를 보고 있다.
오래보느라 노려보는 거
그렇다,
한쪽은 어느 하나의 기면이라
신은 아침을 믿고 아침은 그를 믿어
그는 아직 신을 믿는다.
다만 아침은 아름다우니
그는 혼잣말을 내뱉는데
침대 아래로 손에 쥔 둥근 붕대가 미끄러진다.
스스로가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팔로
휘적거리면서 그가 잡으려는데
집까지 굴러가는 테니스공이라 하고
십자로 칼집을 내었다 하니
식탁 의자는 여섯
다리는 넷씩이니까
도합 스물네 개의 테니스공
하루 스물네 시간 의자 발에다가
신겼다 벗겼다 하는 아홉 살 자폐의 소년이 있어
저녁이면 그의 턱에 흰 수염이 새로 자란다.
스스로가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발로
차는데 그의 이불은 흘러내리지 않고
걸쳐진다,
헤이 모자 바이 모자
허공중의 모자는 아직 제 얼굴을 못 찾아
쀼루퉁한 입을 부풀려가며 기다리는 함박
눈.
그게 뭐나 되는 것처럼 밤새
눈이 내린다.
유리창에 달라붙는 눈에
눈이 추위로 점점 커진다.
흰 침대보를 사물함에서 꺼내 터는 새벽
누구일까
들었는데, 팔이 긴 가면만이
저 눈을 감길 수 있다 한 이였는데.
유머레스크Humoresque
여자는 기도하지 않는다 두 손을 모았다가 두 손이 묶인 적 있었으므로 손, 이런 두 손으로 어떻게 서로가 서로를 어루만진단 말인가 팔짱과는 다른 낌과 새 절로 벌어지는 부리가 순리라 할 때 헹구려고 3500원짜리 250밀리리터 과산화수소를 적어도 네 통은 들고 만나야 하는 너무 좁은 간격의 연인들, 붓기 전에 자기를 말하려는 여자에게 앞서 자기 자지를 까 보이는 남자 부었는가 하면 자기를 떠나려는 여자에게 일단 자기 자지를 흔들어 보이는 남자 좆같지 거 좆나 좆같지도 않은 것이 좆나 좆같아서 여자는 정육식당에 갈 적마다 스테인리스 고기집게를 훔쳐온다 소설 『주홍글자』 속 Adultery의 A가 집게를 꼭 닮았다는 생각입니다만, 열여섯 겨울방학 숙제로 제출한 독후감의 마지막 한 줄 그 줄에서 떨어지는 순간 줄광대의 두 다리가 절로 벌어짐에 있어서의 각도 갸도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한 수치가 염치라 할 때 옥상 한 편에 세워둔 접이식 철제 사다리를 펴는 여유가 여자에게도 도래한다 철제 사다리를 딛고 올라가니 하늘에는 별이 없고 내려오니 돌확에 고인 물속에 괴어 있는 별 그 별 여남은 개 집게로 집으려 할 적에 별은 볼 일이 없고 뭉개져 볼 수가 없는 여자의 얼굴만이, 그러니까 울지 마라 지워진다 슬픔은 분탕이려나 허탕이라는데 제가 제게 겨눈 총구로부터 여자는 언제쯤 표적임을 포기하려나 실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지 몰라 경찰놀이에서 수갑을 찬 범인이 주인공인지 수갑을 채운 경찰이 주인공인지 아직 새 대본은 쓰이지 않았으니까 여직이 여자는 기도하지 않는다 두 손을 모았다가 땀이 난 두 손에서 때가 밀린 적 있었으므로,
어느 때 여느 곳 떠도는 여자들 있어
ㅡ같은 하늘 아래 같은 리듬으로 2
내가 좋아하는 것에 나는 차례를 매기지 않는다
내가 아는 수를 세는데 나는 너무나 멀리 와 있다
나를 미워하는 건 허물이 아니어도
너를 잊는 건 죄일 수 있어
나는 말하려는데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보여주려는 아련한 욕구이다
자크 루보의 이 말을 나는 어느 책에서 베껴뒀던 걸까
불어도 모르면서 허영에 겨워서는
저항에 저항하는 순응의 저녁이다
길항에 길항하는 순항의 밤이다
나는 말하지 않는 것이 얼마간 된다
나는 깊이는 없고 나는 넓이가 있다
거칠게 떨며 숲을 헤매기에는 알맞은 덩치다
돼지 아니고 대지다
좌시 아니고 과시다
길을 잃었으니 두려움으로
나는 불려다니는데
창 너머로 들여다본 거실에는 불이 환하고
벽면을 가득 채운 텔레비전 속 춤을 추는 가수들
너는 그네들을 보며 앞으로만 있고
나는 그네들을 보는 네 옆으로만 있다
앞으로만 있는 너의 귀
단발의 머리칼을 재차 귀에 거는 너의 습관
어느 나라의 노래일까?
옆으로만 있는 나의 귀
있어도 내게는 안 들리는 노래
저기 있는 너
전에 없이 춤을 따라 추지 않는 너
내게서 사라진 네가
거기 있는 너
발꿈치를 살짝 들고서
창에 얼굴을 붙이고서
나는 긁는데
철물점에서 훔쳐온 대못 하나가 말하길
차라리 망칠 데려다 때려 부수질 그래
졸라 비겁한 년
너 같은 년이 가장 악질이지
나는 알겠는데
깨는 게 용기일까
깨진 건 관계일까
자장이냐 자장가냐
네 하늘에선 별도 참 어여삐 반짝여라
보여주기식 일기 같은 내 빤한 치장
없는 별도 있는 별이라 창에 쓸 적에
머리 위로 떨어진 별이 하나 있고 그거7
이제 막 빨기 시작한 불붙은 담배라
지져질 만큼 어디 한번 지져져봐라
나는 내비둬봤는데
정수리에 여문 딱지 끝끝내 못 떼고
머리칼 끝에 붙은 비듬 하나 집는 그거
슬픔 아니고 척이라서
오늘도 나는 숲에 가 또 떠든다
떠돈다고

에밀리 선(Emily Sun)
약력:
에밀리 선은 호주의 신인 작가이자 시인으로 와주크 노옹가르족(퍼스,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의 땅에서 거주하면서 활동하고 있다. 그녀의 작품은 Meanjin, Cordite Poetry Review, Australian Poetry Journal, Mascara Literary Review, 『호주의 서구 및 아시아 신흥 국가 사람들』 등 다양한 선집 및 잡지에 실렸다.
2018~2020년 그녀는 전국 Deborah Cass Writing Prize에서 2위를 차지했으며, 시와 산문을 창작하며 Katharine Susannah Prichard와 Center for Stories에서 펠로우십을 받았다. 그녀는 문화적으로나 언어적으로 다양한 글쓰기에 대한 현재의 이해를 넓히는 것을 목표로 하는, Goolagatup Heathcoate에 기반을 둔 새로운 글쓰기 집단인 <Invincible>의 창립 멤버이다. 그녀의 첫 장편 시집 Vociferate는 2021년 Fremantle Press에서 출판되었다. 이 시집은 다소 자서전적 색채를 띠고 있는데, 21세기 초의 계급, 인종 및 성별의 교차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시집은 2022년 Kenneth Slessor Poetry Prize(뉴사우스웨일즈 프리미어 문학상)에서 장려상을 수상했다.
그녀는 영어 및 창작 예술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퍼스, 시드니, 런던의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가르쳤으며 호주 서부의 시골 지역에서 영어와 문학을 가르쳤다. 현재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 대학교의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며 호주 서부 지역의 역사소설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
Links / 링크:
http://iamemilysun.com
http://fremantlepress.com.au/contributor/emily-sunl/
톡 피진(사투리로 말하기)*
...
그게 만약 나를 눈멀게 하면
… 나는 돛을 죄는 법을 배울 거야
그게 만약 나를 마비시키면
... 난 달리기를 배울 거야
그게 만약 불치병이라면
... 나를 화장해줘
... 심폐소생술은 말고
오피오이드** 복용량도 늘리지 말고.
그렇게 나는 행복하게 죽어
신에게 더 가까이 가네
아무도 말이 없으니
그래서 내가 계속 말을 하지
아무것도 쏟아져 나오지 않아
하지만 시계는 계속 똑딱똑딱
콧줄을 하고 마스크를 쓰고
틱톡***은 조롱하고....
…
… 이 낯선 병동에서 우리는
낯선 사람들, 어마어마한 공포의
라운지, 도망치거나 싸우는
반응도 없고, 초자연적인
구세주도 없고, 여기엔... 제누스는
로웰에 나가 있고, 나눅은 북쪽에 있고,
퀸다스****는 너바나 호수에서 수영하고
있고, 또 당신의 시체는,
신은...
그만!
....
제발 그만!
숨을 쉬세요....
셋까지 세고....
숨을 쉬세요....
수우우우우움 쉬세요!!!!!
...
그냥 조금 따끔거려요,
(그냥 조금 찔린 거야)
크로셰 바늘이 내 혈관 속에
...쑤시고 찌르고 찔러서 그래.
산소 탱크는 뗐고
이제 문이 닫힙니다.
내 목에는 물건이 하나 있는데
반짝이는 PICC 라인.
이제 투입을 시작합니다!!!!!!
암 것도 남지 않게 될 때,
그냥 말하기, 사투리로 말하기.
*이 시는 피진 영어, 즉 톡 피진이라는 사투리 영어에 기반한 희곡이다. (저자 주) 톡 피진은 주로 파푸아뉴기니 지방에서 사용되는 영어 사투리를 말하는데 시인은 그 사투리로 희곡 대본처럼 쓴 시를 제시했다. (역자 주)
** 오피오이드: 아편 같은 진통제를 말한다. (역자 주)
*** 틱톡: 짧은 영상을 주로 올리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말한다. (역자 주)
**** 퀸다스는 오스트레일리아에만 있는 작은 동물인데 캥거루처럼 육아낭에 새끼를 넣어 다닌다. (역자 주)
저 오래된 발라드들은 늘 의미가 너무 많아
가락 단음계의 악보에는
뒹굴기가 적혀 있었다
상승하는 현들이 클라이맥스의
합창으로 가 늘 우릴 울게했다.
키스는 결혼으로 끝나야만 하고
어떤 헌신과 작 은사랑은
아이들을 낳게 하고 (물론 아들들이지)
[사창가(gei dao)*에 다녀온 건 신경꺼]
만약 그게 결혼으로 끝나지 않는다면
미스 사이공은 죽어야 하네
너의 포춘 쿠키**에는 유교사상이 있고
나의 뇌에는 혼란이 있어
우리 딸들이 이런저런 노래를 부를 수 있어서
신들에게 감사해.
그들은 에라토***가
엄마의 하룻밤 연애의 결과라는 걸 알지.
멍들어 아픈 가슴과
숨도 못 쉬는 통증들
생물학적 손실에 대한 원초적 반응****
언제 다른 한정판 난자가
하수구로 떨어지는지

*시에서는 gei dao 를 이탤릭으로 표기했는데 이 말은 중국어로 간다는 뜻으로 문맥상 사창가를 뜻하는 듯 하다. (역자 주)
** 포츈 쿠키는 중식당에 가면 주는 행운의 과자로 과자 안에 행운의 말을 적어주는 작은 종이쪽지가 들어 있다. (역자 주)
*** 에라토는 그리스의 여신, 뮤즈들 중 하나인데 제우스와 므네모시네 사이에서 태어났다. 혼외자로 태어난 셈이다. (역자 주)
**** 여성의 월경 전 신체변화를 말하고 있는 듯 하다. (역자 주)
***** 광둥어로 “닭 쿠데타”(chicken coup)는 일상에서 “매춘”이란 경멸적인 뜻으로도 쓰인다. (시인 주)
(역자 주 추가: 이 시는 추가적인 설명이 더 필요한 듯 하여 붙입니다)
광둥어는 홍콩을 포함하여 중국 남서부에서 많이 사용하는 중국어이며, 시에서 이탤릭체로 표기한 gei dao 를 말하는 것 같은데, 시인이 이를 따로 표기하지 않고 그냥 각주만 붙였네요. 시 시작 부분에 나오는 단음계는 아래 그림을 보는 것이 도움이 될 듯 싶습니다.

음이 올라갈 때 6 음과 7 음은 반음 올리고 음이 하행할 때 다시 6 음과 7 음을 반음 내려주는데, 이런 형태를 시에서 “wallowing”(뒹굴기)이라고 표현하는 듯 합니다. 단음계는 주로 우울한 노래에 많이 사용되는데, 시인은 wallowing 을 선택하여 그 우울한 뒤척임을 전하고 있고요. 또 wallowing 는 탐닉하거나 자신에게 몰두하다는 의미도 있기에 우울한 노래에 잠겨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좀비, 뇌를 수배 중
말라버린 뇌들
똑같이 된 혀
그게 거기에 놓인 게 보이네
현재의 공간에서
얼어붙은
코 서멋* 해변 위에
움푹 파인 코코넛.
떨어져 나간 나의 뇌를
정확하게 대체할 수 있는 걸 원해
그들이 파낸 숟가락은
마카크 원숭이** 장난감이었어
보름달 뜨는 날 파티에서
연구용 원숭이 소년들이
짓밟은.
너덜너덜 썩어가는 헝겊 인형처럼
나는 다시 소생되고 싶어
식물성 폴리스테린 깍지들로 다시 채워지고
발효된 나무 조각들은 내버리고
전반적으로 더 나아지도록 스테이플 찍어서.
행복으로 순결한
유기농 뇌가 있으면 좋겠어
필수적인 신경접합부는 발사하고 하지만
전두엽은 너무 발달하지 않은 걸로,
의심은 제거하면 좋겠네
독일식 정확함과
일본식 하드웨어로.
하지만 어떤 유형도 좋아 정말로
다시 시작하는 리셋 버튼이 있기만 하면
모든 기억들 싹 삭제하고
다시 작동할 수 있을 테니까.
*코 서멋: Koh는 타이어로 섬을 뜻하고, Summat은 호주 북쪽의 영어 사투리로 ‘어떤 것’을 뜻한다. (시인 주)
** 마카크 원숭이macaque: 꼬리가 짧은 아시아의 원숭이의 일종 (역자 주)

신용목
약력:
1974년 거창에서 태어났다. 2000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통해 등단하였다. 시집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 『아무 날의 도시』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 『나의 끝 거창』 『비에 도착하는 사람들은 모두 제 시간에 온다』, 산문집 『우리는 이렇게 살겠지』, 소설 『재』 등이 있다. 백석문학상, 현대시작품상, 노작문학상, 시작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계명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 재직하고 있다.
Links / 링크:
http://library.ltikorea.or.kr/writer/202026
http://en.wikipedia.org/wiki/Shin_Yong-mok
미래 중독_1
열아홉의 내가
자신의 미래를 보고 싶어서
삼십 년을 살았다
내 미래는 이런 거였구나, 이제 다 보았는데
돌아가서
알려주고 싶은데, 여전히 계속되는 시속 한 시간의 시간여행을 이제 멈추고
돌아가서
알려주면, 열아홉의 나
자신 앞에 놓인 삼십 년의 시간을 살아보겠다 말할까 아니면
살지 않겠다 말할까
도굴꾼이 다 털고 간 공동묘지처럼 모든 집이 불을 끈 골목이 이어지고
목맨 여자의 연홍색 치마처럼 걸린 가로등 맨발로 떨어지는 밤을 붙들고
울었던, 그게 열아홉
까만 먹지 숙제에 영어 단어 대신 써내렸던 이름과 자전거를 아무렇게나 쓰러뜨리고
바퀴살처럼 부서지는 강물을 내려다보며, 물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높은 곳에서
끝없이 뛰어내리는 거라고
생각하던 긴긴 밤으로부터
나는 겨우 하루를 살았는데, 생각 속에서 삼십 년이 지나가고
넌 그대로구나
꿈에서는 스물하나에 죽은 친구가 나타나, 우리가 알고 지낸 삼 년을 다 살고
깨어나면 또 죽고
열아홉 살 다락방, 고장 난 시곗바늘을 빙빙 돌리다 바라보면
창밖은 시계에서 빠져버린 바늘처럼 툭 떨어진 어둠,
그러니까
열아홉을 떠올리는 일은 열아홉이 되는 일이 아니라 열아홉까지의 시간을 다
살게 하는데, 어둠 속에 촘촘히 박혀 있는
시곗바늘처럼
눈을 감으세요, 이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이미 죽어서 이 이야기를 듣기 위해 당신은 죽어야 합니다
긴긴 밤이라면
귀를 막으세요,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나는 죽어서 이 이야기를 영영 모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긴긴 밤이라면
당신은 어디 있나요, 두리번거리며
태어나지 않은 사람의 죽음을 찾습니다 긴긴 밤이라면
그건
우리 다 아는 이야기,
잠으로는 견딜 수 없는 어둠 속으로 죽은 사람의 생일이 지나가는 것처럼
나는 삼십 년을 살았는데, 네게는
하루가 지나갔구나
어느 날 삼십 년 후의 내 기억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열아홉 나에게 닿아서는
다락방, 시계 속 단단하게 감겨 있던 검은 태엽처럼
날마다 같은 밤을 돌고 도는
미래 중독_3
할인마트 간판에 불이 켜지는 시간, 종말 후에도 남아 있을 진열장 꽁치 캔을 쓸어담는 생존자의
위태로운 눈빛처럼
누군가 인간을 촛불처럼 켜놓고 둘러앉아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곧 인간을 끄고
박수를 칠 차례인지도 모릅니다
한 조각씩 잘라낸 인생을 빵칼로 덜어낼 때, 접시처럼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발밑에서
그림자는 개 같습니다 할인마트 간판에 불이 켜지는 순간을 기다려 달려오는 개, 식탁 아래에서 제
몫의 접시를 핥기 위해 붉은 혀를 늘어뜨린 개
인간이 닳아가는 시간을 보여주기 위해 세계를 물고 놓지 않는 개
불러봅니다, 두 손을 앞으로 내밀고 등을 쓰다듬으며 이름이 뭐야? 물으려던 것뿐인데
어둠이 붉은 잇몸을 당겨올린 것처럼
흰 송곳니, 묽은 침을 뚝뚝 흘리며
어김없이
할인마트 간판에 불이 켜지는 시간이면 나는 냉동육과 가족을 구분할 수 없습니다 빵 봉지와
몽유병을, 차곡차곡 엎어놓은 양은 냄비와
클랙슨 소리를 구분할 수 없습니다
불빛에 흔들리는 인간이 한 블록 지나 꺼지고
흰 연기가
아무렇게나 붙여놓은 바코드처럼 어둠 속에 잠시 제 영혼을 찍어놓고 사라질 때
종말 이후의 생존자가 꽁치 캔을 따는 소리처럼 순간, 와르르르 무너지는 진열장처럼
할인마트 수북한 선물 상자 속에 봉합된 개 짖는 소리를 컹컹, 마음의 둥근 접시에 옮겨담으며
나는 잊지 않기 위해 중얼거립니다, 내 이름 속에는 송곳니가 박혀 있다
미래 중독_5
꿈에서 깨려면 잠에서 깨야겠지요. 그러나 꿈에서 깨고도 계속 잠을 자는 사람이 있고, 잠에서 깨고도 계속 꿈을 꾸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봐, 일어나 봐! 얼마나 사나운 꿈을 꾸길래 팔까지 휘저으며……
깨우면, 두리번거리며 깊은숨을 몰아쉬는 사람처럼.
어릴 적 어른들이 꿈을 꾸라고 해서 나는 여전히 꿈속에서 자라고 있는데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잠들어 있는 걸까, 얼마나 더 자라야 해서 아무도 깨우지 않는 걸까
사나운 꿈에서 도망치느라 깊은숨을 다 써버렸는데
팔까지 휘저으며 잠 속을 다 헤매었는데
밤의 어디에도 내가 없어서
나를 찾아
물속 같은 창 너머
지도를 펼치듯 내 몸을 반으로 가르고선 가만히 들여다보는 달. 꿈속의 내가 꿈밖의 나에게 건넬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몸이라서, 거기 매달린 하루를 꽃잎처럼 한 장씩 떼내며 내 인생을 점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달이 제 손을 짚은 자리마다 피 묻은 잎들을 가득 달고 가을이 멀리 도망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닙니다. 나의 조상은 망나니가 아니라
노동자였습니다.
생활이 날카로운 곡괭이를 들고 웃자란 마음을 파 검은 탄으로 얼굴을 덮어놓는 밤.
노란 등불 아래 달그락거리는 수저 소리가 김 오르는 밥과 삭은 김치를 몸의 동굴 속으로 나르는
그러나
꿈속의 모든 생활이 아침과 함께
깨지고,
파업의 계절이 와 무성한 잎을 떨군 계곡 사이 제설차가 빨간 등을 깜빡이며
이쪽 뺨을 밝혀서 저쪽 뺨을 지우는
것처럼
이제 고백하자. 나는 죽은 사람이 살던 집에서 죽은 사람이 쓰던 물건을 쓰는 사람. 내가 잠들었을 때,
내가 사는 집에서 내가 쓰던 물건을 쓰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나는 죽은 사람의 인생 속에서 죽은
사람의 몸을 쓰며 사는 사람.
하지만
이건 악몽이고, 악몽은 꿈속에 있어야 하는데
나는 한 번도 잠들지 않았습니다.

알리 알리자데(Ali Alizadeh)
약력:
알리 알리자데는 멜버른에 기반을 둔 작가이자 학자이다. 그는 마르크스주의 이론, 공포 이론, 대륙 철학과 역사에 대해 쓰고 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는 셜리 잭슨, 장 패트릭 만체트, 리처드 매시슨, 알랭 바디우, H. D., 베르톨트 브레히트 등이 있다. 시집 『끝을 향하여』와 『공기 속의 재』, 소설 『잔 다르크의 마지막 날들과 거래』, 미학 이론인 『마르크스와 예술』 등이 있다. 그는 멜버른에 있는 모나시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Links / 링크:
http://giramondopublishing.com/authors/alizadeh/
비채식주의자 (한강을 빌려)
정말 맞는 말이야, 진짜,
부패가 시작하기 전에 이 몸을
다 써먹어야 한다는 것. 아마도
때이른 풍장(風葬),* 그리고
주방장으로 나서기에 이 망할 기계 안에 있는
유령보다 더 나은 이가 어디 있을까. 나는 어깨에서
시작하려고 해, 그토록 여러 해 고된 일로
그렇게나 아픈 어깨. 돼지의 어깨 살 스테이크
레시피로 하면 충분할 거야, 우리 인간은
돼지와 꽤 비슷하니까. 삶을까 구울까? 내게는
압력 냄비가 없으니 아마 연기가 나겠지. 실제로
여러 해 담배를 폈으니 내 고기는 잘 준비된 거야, 아아
지난 몇 년 동안은 제일 싸구려 담배만 필 수
있었는데. 가난과 과로는 저절로 열리는 이 잔치에선
정말 최고의 재료야. 전채 요리로는,
내 두개골을 벽에다 깨려고. 왔다 갔다
톱질은 하지 않을 거야, 그럴 여력이
하나도 없어. 그 다음 차례는, 뇌를 물에 적셔
피를 모조리 빼려고. 디저트는? 내 윗배를
갈라 간을 빼낼 거야, 당연히
지방 간이겠지, 수십년 간 그토록 공손히 알코올에
절였으니, 사람이 살 수 없는 세계에서 수십 년
세월 더 공손히 살았으니까. 나는 푸아그라**로
도넛을 만들고 세 가지 코스요리를 내놓을 거야
희석한 피와 오줌을 잔에 따르고. 자본과
민주주의의 신에게 식전 기도도 청할 거야.
내장 파낸 내 시체가 씩 웃으며 먹기 전에.
*풍장(風葬): sky burial, 티베트의 장례풍습으로, 시체를 뜰에 내다 놓고 새들이 파먹게 하도록 장사 지내거나 시체를 태우고 남은 뼈를 추려 가루로 만들어 바람에 날린다. 바람이나 독수리를 타고 생명의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믿는 데서 기인했다 한다.
** 푸아그라는 거위나 오리의 살찐 간으로 만드는 대표적인 프랑스 요리다.
서구의 몰락
감축과 지연, 중단에도 불구하고
내 뱃속에서 그 독약은
성공하지 못했다. 역에서부터 걸어와야 했다
당연히, 밤 11시 이후엔 버스가 없으니. 발은
정말로 화끈거렸고, 밤은 적당히 으스스했고, 적어도 비는
나의 절망에 추가되지 않았다. 대중교통은
전혀 나아지지 않고, 어쩌면 더 나빠지고
끔찍한 탈수증, 도덕적 타락과 죽음에도 불구하고
생존의 미끼를 달랑달랑 매달고서, 나는 생각했다
더 대단한 것들에 대해서: 1812년에 나폴레옹이 결국
이길 수 있었나? 러시아, 러시아, 늘 러시아가 문제야. 시위대가
이란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그럴 리 없겠지. 그러곤
다시 토하고 싶은 격렬한 충동이, 제대로 된 소화불량은
제대로 불쾌하다. 그 15불짜리 다크
에일이 분명해 ̶15불, 씨팔 ̶저 아래서
곪아 터지네. 전기가 들어온 괴상한 표지판이
산업단지로 가는 진입로에서 한 남자를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얼굴이 자살한 직장 동료를 생각나게
하네) 셔츠도 안 입고, 복근에다 이두박근까지, 멍청하고, 절망적이야.
체육관을 안내하는 광고라고? 파산하게 될 또 다른 사업 아닌가? 내
불안과 나폴레옹의 패배를 다시 연결해 생각하게 하네
이란 사람들의 예정된 실패와 함께: 여기서 맥주는 살인적으로
비싸고, 저기서는 인정사정 없는 이슬람 악귀들이 있고, 한때
서양이라고 불렸던 무언가의 전망은 어디서
망해 버렸나? 너무 어두워, 나를 잠시 쉬게도 못하는
무시무시하게 밝은 포스터들 말고는, 집들은 무지막지
높은 가격으로 매물로 나왔고. 내 말은 만약 이게
이 모든 게 위대한 문명의 잔재라고 한다면
또 이란에서 태어나 프랑스에 미친 술주정뱅이가
오늘 밤 유일한 증인으로 서 있다면, 그렇다면
그건 분명히 이미 끝장난 일일 것이고, 제국은
무너졌겠지. 축하할 것도 없고, 동정할 시간도 없어,
너무 배고프고, 너무 피곤해서 기쁨도 눈물도 나지 않으니.
세 번째 시 (신용목을 읽고)
횡단하는 문화라는 말은 건너가야 하는 문화가
있다는 말처럼 들려요. 신체들과 언어들이 있지요
분명, 하지만 문화라니요? 김치와
베지마이트가 원래부터 다른가요?
이런 것들, 우리가 먹고 나서는 우리
뱃속에서 시커먼 보편적인 곤죽으로
변하면 잊어버리는 것들요? 정체성은 늘
잘못된 자각의 대상이었어요, 우리가
뭉치는 (그래서 족쇄를 벗는) 것을 막으려고
진짜 기생충들이 떠받드는 전우, 그러니
<오징어 게임>과 <매드 맥스> 사이엔
원래 어떤 차이도 없답니다: 지금 시대
서울이나 호주 오지(奧地)의 공포를
보여주는 움직이는 영상들. 만약
횡단하는 뭔가가 있다면 그건 우릴 갈라놓는 것이
아니라 우릴 갈라놓을 거라고 추정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더 나은 가정을 해봐요. 우리 하나될 수 있다고 (그럴 것처럼
행동해봐요) 공포를 쫓아낼 수 있다고 혹은 이길 수 있다고
가정해봐요, 문화와 정체성을 넘어선 보편적인
시커먼 존재가 됨으로써 말이지요. 그러면 아마도
언어와 신체들, 베지마이트나 김치, 문화와 횡단에
관한 사실 이상의 진실들이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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