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추천사 김근[202406vol.10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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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1935
ㅡ 경성
언니의 시신을 찾았다 언니의 시신에는 중절모가 있었다
암흑만큼 모자 안은 깊었고 그 안으로 세상이 들어갔다 세상이 가득해질수록 새로운 세상이 열리기 시작했다
빛을 상실한 시선이 뒤섞였고 언니의 신화가 들려왔다
연대라는 감각으로
우리라는 상실로
언니가 언니를 불렀다 언니가 언니를 사랑했다
우리가 언니가 된다
*
시계가 멈춘 도시
목소리가 범죄인 도시
언니들은 중절모를 쓰고 있다 암흑을 잔뜩 뒤집어쓰고 있다 전차가 거리를 지나가고 경관이 사방을 휘젓는다
잡혀가는 언니
밤의 흔적이 된 언니
나무에 매달려 과녁이 된 언니
언니들로 이루어진 세상은 강탈이 일상이다 언니들에게 힘은 사라지는 신기루 같다
피의 운율을 느낀다
거리에 피가 들끓는 장미꽃 같은 언술을 느낀다
꽃이 만발하는 감각으로
언니들의 몸은 공간을 왜곡한다
암흑은 피를 다 넣을 수 없다 암흑은 세상을 다 넣을 수 없다
언니를 다 넣을 수 없다
무한함이 언니의 세상이다
언니는 넘쳐흐를 것이다
*
언니의 시신은 꽃잎으로 변해갔다 중절모 안에서 언니의 가시가 쏟아졌다
과거의 언니가 지금의 언니를 형성하고 있었다 과거의 언니가 지금의 언니를 장미로 은유하고 있었다
드러내는 가시처럼
아름다움이 되는 잎처럼
언니는 언니를 만났다 언니는 언니와 헤어졌다
언니는 죽었다가 환생했다 언니는 잃었다가 찾았다
언니는 언니를 설득했다 언니는 언니에게 한 번만 더
언니를 구하자고 했다
싸움을 시작하자고 했다 언니는 투쟁이었다
언니는 지금이었다
1935
ㅡ 도시의 산책자
베를린을 걷듯이 경성을 걷는다 도시의 내부를 걷는 것은 외부를 걷는 것과 같다
불빛과 검열
그 사이를 걷는 것과
지금과 절정
그 사이를 걷는 것과
걷고
또 걸으면
미래였다
미래를 닮은 도시였다 경성을 잊어도 될까
경성을 잊을 수 있을까
언니,
당신을 잊어도
언니,
당신의 목소리가 여전하다면
나는 어떤 언술로 당신을 벗어날 수 있을까
벗어나지 않아도 될까
이 사이를 걷는 것이
언니,
당신을 걷는다고
당신이 말하려 했던, 말하고 싶었지만 말할 수 없었던
세계를 혼돈으로 만들어버리는 비밀이 있다고*
나의 내부를 걷는 것만으로도 외부로의 도달은 이루어진다고
당신의 문장을 받아 적고 있다면
언니,
꽃이 쏟아지는 꿈과
꽃을 밟으며 걷는 도시에서 느끼는 통증의 유사함을
우리,
사람이 사랑을 베어 먹으며 살던 시절을 기억하자 사랑을 베어 먹고
사랑처럼
웃었던
사랑처럼
발음했던
우리,
도시를 걷자
약속은 잊지 않았고 만날 때 가져오기로 한 시도 잊지 않았어
언니,
우리처럼
그렇게 만나자
그렇게 서로를 걸어내자
1935
ㅡ 저격수
언니는 언어에 산을 담았다 땅이고 샘물이고 은유인
언니의 언어는 언니를 향한다
타자처럼
때로는 자아처럼
시어를 엮어내는 실타래로, 시를 연작하는 핏줄로
감각을 따라 언니를 겨눈다
언니의 내면에 과녁과도 같은 단어를
사랑을 흉내 낸 무화과
구름으로 가득한 슬픔
시간의 유대를 의심하는 안경
언어를 총처럼 다룬다 장전과 조준을 문장과 철학이라고 읽는다
안경이 깨진다
슬픔이 우기를 이룬다
사랑처럼 무화과를 베어 먹는다
깨뜨리고자 하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과녁을 헤맨다
언니를 헤맨다
지금의 언니가 울고 있다면
먼 곳에서 총알처럼 감각이 날아올 것이다
먼 곳에서 언니를 지키는 총성이 울릴 것이다
과거의 언니가 지금의 언니를 지키기 위해
연대라는 감각을 일깨울 것이다
무화과처럼
슬픔처럼
안경처럼
시라는 총성이 울릴 것이다

2021년 《아시아》 등단.
〈심훈문학상〉 수상 시집 『숨과 숲의 거리』가 있음.
2022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
문학 동인 〈공통점〉 활동 중.
추천사
언니 상실의 시대, 기원과의 연대
김도경이 1935년으로 떠났다. 그는 지금 여기 없다. 아니, 있기도 하다. 아니, 없기도 하다. 그는 정말 거기 그때로 간 것일까, 아닐까. 왜 하필 1935년일까, 생각할 때 나는 쓸쓸해진다. 쓸쓸함의 이유를 알기도 전에 1935년이라는 연도가 불러일으키는 이상한 감각들. 감각들은 1935년 경성으로부터 내가 있다고 생각되는 지금 여기로 전송되어 온다. 감각들은, 그가 부재한지 아닌지 확실치 않은 지금이 현재인지 미래인지 더욱 불확실하게 만들어버린다.
김도경 시의 화자가 1935년에서 한 일은 “언니”를 호명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언니”는 시신으로 발견된다. 주인은 잃은 중절모만이 남겨졌다. 언니는 상실되었다. 언니의 상실 이후 “우리”는 상실로 점철된 “우리”가 된다. “우리가 언니가 된다”라는 구절에서 언니는 상실 이후의 언니인가 상실 이전의 언니인가. 확실치 않다. 언니가 상실된 이후 언니라는 말은 미끄러진다. 이 미끄러짐 속에서 언니는 언니를 만나고 언니는 언니와 헤어지며 언니는 죽었다가 환생하고 잃었다가 찾아지기도 한다. “언니는 넘쳐 흐를 것이”라고 화자는 예견한다. 이 무수한 미끄러짐이, 이 넘쳐흐름이 언니일까. 1935년은 언니 상실의 기원이다. 1935년는 언니라는 기원의 상실의 연도이다. 그러므로 1935년 이후는 언니 상실의 시대이다.
한데 이 “언니” 낯설다. 지금껏 한국시에 등장한 어떤 언니와도 닮지 않았다. 식민지 시대였던 1935년이 배경인 만큼 “언니”는 “잡혀가는” “밤의 흔적” “강탈” 같은 말들로 감각화되고 있지만, “운율”이나 “언술” 같은 말을 보면 “언니”는 시와 연관된 존재라고 짐작해볼 수 있다. 언니는 시인일까(나는 공교롭게도 소월을 떠올렸다. 소월이 죽음을 맞이한 게 1934년 12월 24일인 것을 보면 1935년은 소월의 죽음 이후다. 소월이 우리 근대시 태동기의 가장 앞자리에 있다고 보면 그를 기원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 역시 확실치 않다. “언니”가 소월이고 아니고는 그리 중요하진 않다.). “언니”는 언어의 언니가 아닐까. 그 “언니”가 “목소리가 범죄인 도시”에서 “검열”을 뚫고 “세계를 혼돈으로 만들어버리는 비밀이 있다고” 믿으며 “투쟁”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언니”의 이러한 행위를 식민지 시대 저항의 언어로만 읽어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떤 시대에도 시적 언어는 현실에 대해서 그런 일들을 해왔다. 다만 김도경의 시는 그 상실의 기원과 “연대”하고 싶을 뿐이다. 그러면서 상실 이후 흘러넘쳤던 언니들을 모두 “걸어내고” 싶은 것인지도.
문제는 그가 기원과 연대한다는 사실이다. 기원과 연대한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로 회귀한다는 말이 아니다. 기원은 순차적 시간을 넘어서 있다. 그러므로 기원과 연대하는 일은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순차적 시간에 교란을 일으킨다는 말이고, 현재를 불확실함 속으로 끌고 간다는 말이다. 이 혼란과 불확실함 속에서도 그가 지키고자 하는 게 있다면, 잃었지만 “잊지 않았어”라고 말하는 태도이리라. 그리고 그 망각에 저항하는 기억은 “사람이 사랑을 베어 먹으며 살던” 기원적 시간을 향해 있다. 아직 미래는 아닌, “미래를 닮은 도시”에서 “언니”를 호명하는 일은 그러므로 순차적 시간을 벗어난 다른 미래, 다른 시간을 꿈꾸는 일일 것이다.
김도경이 1935년으로 떠났다. 그의 언어는 거기서 변화하고 있는 중이다. 그의 데뷔작이자 첫 시집 『숲과 숨의 거리』에서 “나는 나를 만드는 일을 해낼지도 몰라요”(「긴 나선형을 그리는 음표」)라고 말하며 세계와의 관계 속으로 형성되는 불안한 자아의 정체성을 드러내던 소년은 이제 여기 없다. 그는 1935년으로 떠났고 우리는 여기 남겨져 그가 교란시키는 시간을 살아내고 있다. 나의 쓸쓸함은 거기서 기인하는 것인지 모른다. 그가 보내오는 혼란의 언니를 여기서 완성해야 하는 독자로서의 쓸쓸함 같은 것. 그러나 나는 그 쓸쓸함이 기껍기 이를 데 없다. 김도경 시의 변화가 어디에 이를지 세계의 혼란을 어떤 방식으로 우리 앞에 가져다 놓을지 궁금하기 때문이고, 김도경이라는 다시금 새로워진 목소리를 만나는 일로 가슴이 몹시 두근거리기 때문이다.

김근 l
1998년 《문학동네》 신인상 등단. 시집 『뱀소년의 외출』 『구름극장에서 만나요』 『당신이 어두운 세수를 할 때』 『끝을 시작하기』가 있음.
ㅡ
2024년 06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