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신동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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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
얼음물고기
물고기 또는 물고기라는 투명한 이름들
물고기 또는 물고기의 몫으로 마저 불러주어야 할 믿음들
파들대는 등지느러미를 새처럼 날갯짓하면서도 앞을 내다보아야만 한다는 건
한 줌 허락된 기포 속에서 남은 숨을 들이켜는 일
얼고 춥고 머나먼 강가에서
지쳐 오들오들 떨던 아가미를 감싸던 작은 비늘들은 어디까지 떠내려갔나?
더 얼마나 난폭한 꿈에 시달리다 쌔근쌔근 숨이 잦아들까?
비늘 하나 떨치지 않고 물길을 거슬러 헤엄쳐 마침내 물길이 되어 얼어붙는 순간
저 강바닥 물속에도 햇빛은 들고 얼음은 얼겠지
*
어둠 속의 니케
―비트 16 

어둠 속의 니케
척척한 날개
우린 더 외로워져서 더 다정하려고 서로에게 지도를 건네곤 했다. 당신이 선물한 지도는 늘 아름다웠지. 없는 당신과 없는 나와 없음의 삼각측량은 늘 옳았다. 삶 끝까지 산개하고 도포하고 떠밀리듯 등고선을 따라 걷다가도 늘 제 시간에 맞추어 당신에게 발사되었다고 스스로 위로했지만
내가 모르는 당신을 향한 촉발은 가없어서 마음의 편각과 지도의 편각은 어긋나기만 한 것일까. 나침반과 지도, 도북과 자북, 탄도와 행로, 길과 표적은…… 갈망 속에서 약한 존재는 모두 녹아 사라지리라는 말. 그러니 당신은 자신을 불살랐겠지. 그러고는 말할 거야.
장작불로는 빛을 비출 수 없다. 화염의 미로를 비출 뿐이다. 당신은 아직 어둠 속에 있고 정복을 모른다. 당신은 두 팔을 잘라 던졌고 이제 더 이상 잘라 던질 팔이 없어 날개로 비질을 한다. 짚단 같은 그림자를 불구로 껴안는 노을의 염습 속에서 동정으로 붉게 달아오른 몸뚱어리를 쓸어주며
강한 자들은 강한 자신만을 사랑한다.
어둠 속의 니케
척척한 날개
*
얼음물고기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빛살
이 고단한 세계를 유영하는 아득한 지느러미처럼
이파리 하나 없이 물살을 헤집는 한 송이 수초처럼
얼어붙은 물고기 또는
우리가 우리의 헛된 믿음으로부터 우리의 몸뚱이를 회복하는 데 소요되는
結晶의 시간
어디선가 돌들이 새로 태어나는 소리
와글와글 아가미와 아가미가 맞닿는 소리
이 고단한 세계를 유영하는 아득한 지느러미처럼
얼음물고기, 속에 갇힌 기포 속에 트이는 한 점
빛살
-대표작-
*
종생기
―비트 5
나는 작전에서 소외되어서 버림받고 우중충한 북벽에 숨었다. 나는 폭격으로 무너진 담장 위에 놓인 꽃병을 보며 벽을 긁는다. 벽에 앉은 그을음을 손톱으로 긁어가며 마지막 편지를 쓴다. 코털에 휘감기는 매캐한 화약 냄새 속에서 묘비명이 적힌다. 나는 지금의 당신이었고 당신은 지금의 내가 될 것입니다 성모여, 고상함과 수치와 극기와 짐승은 모조리 악마에게 돌리시고 제게는 아내를 주소서. 지평선까지 무한한 폐허가 펼치는 지도가 사방을 에워싼다. 검은 옷을 입은 노파는 딱딱한 빵바구니를 안고 잠들었다. 잠든 귓구멍에서 빵조각을 빼물고 까마귀 떼가 날아오른다. 소개된 거리 끝에서 고양이 떼가 잘린 손가락을 물고 흩어진다. 두 동강이 난 아치형 목조 다리 아래에서 뗏목은 매듭을 풀고 토막토막 분해된다. 강물 위로 누렇게 바랜 백기가 죽은 태아를 안고 떠내려간다.
이것은 데자뷰다. 오늘은 이렇게 끝날지도 모른다. 거대한 웅덩이가 푹푹 파인 전선의 북쪽 목축지에서 낙오와 항복은 나의 작은 비밀이 될 테지. 나는 버림받고 너절한 작전지도 속에 숨는다. 다리 너머로 얕은 습지가 펼친다. 억새가 비로드처럼 반짝인다. 그 끝에 얕은 산악지대가 가로막는다. 조각난 무릎뼈를 맞추는 소리가 아득하게 울린다. 나는 낙오했고 오른쪽 다리를 잃었다. 폐허가 된 목축지 뿌연 잿빛 속에, 건초더미가 날아올라 목책에 널린다. 고막이 터져서 침묵 속에 날뛰는 말과 염소들이 무사히 가을의 정적 속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고요한 채벌장 위로 별이 차오른다. 나는 낙오했고 나는 내 슬픔을 구속한다. 성모여 대지를 눈으로 덮어주시고 제게는 아내를 주소서.
나는 아버지의 이불에서 태어났고, 아버지는 어머니의 배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배를 가득 채운 하얀 쌀벌레들, 쏟아져 나오는 벌레들의 틈바구니에서 그해 첫눈은 다른 해에 비해 일렀다. 그해 첫눈 속에 붉은 새가 날아오르더니 아버지의 북벽에 앉았다. 새는 날아올라 아버지의 정원을 붉게 물들이겠지. 나는 북벽에 남아 그을음을 긁어내 눈물로 강을 만들고, 강물에 백기를 눈처럼 흘려보내며 증오를 보태겠지. 정원수 아래로 아이들의 다리뼈를 조각조각 흘려보내며 끝까지 이곳에 남아서 나는 볼 테다. 초롱불과 화덕이 거적에 싸인 무릎을 덥힐 때, 비문(飛蚊)처럼 춤추는 열기의 선들, 나는 어머니를 아버지의 이불 위에 누이고 그 곁에 씨를 뿌릴 것이다. 눈뜨는 새싹에 대고 성호를 그을 것이다.
목초지의 끝으로 서리와 눈으로 뒤덮인 나무들이 행군한다. 목책을 따라 한 차례 폭격이 지나간다. 강가에 버짐처럼 불꽃이 번진다. 무한의 정적 속에서 캐터필러가 전진하는 것 같다. 작전지도에 낙오와 항복은 그릇된 일이라고 적혔다. 그릇된 일이 아니라 너무나 강렬하기에 금지한 것이다. 내게는 다른 방법이 없다. 내가 낙오한 것은 애초에 잘못된 일이 아니다. 나는 이곳에 수천 번은 왔다. 이것은 데자뷰다. 모든 것은 반복된다.
*
모스크바
하얀 파랑
더는
넌 뜨겁지 않아
세포를 한 벽 한 벽
헐어
살비듬을 덮고
잔다
재가 되는가
하얀 파랑
이리로
너는
와라
울지 마
겨울
눈알이 빨간
나의 새
*
나의 아름다운 동상들
앞에는 가시와 불길이 치솟는 바다가 끝없이 펼치고
뒤에는 태어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폭풍우가 뒤쫓고 있습니다
술래잡기 장난에 빠진, 나의 아름다운 동상들
이제 우산을 펼쳐 서로를 가려야 할까요?
물인지 불인지 모를 빗방울을 받아 마셔야 할까요?
빗줄기로 너덜너덜한 햇빛 아래 두 팔을 벌리고 더듬더듬
술래라는 이름의, 같은 병명으로 점을 치며
서로 속이다가 어느새 얼음 기둥이 되는 일
스치듯 벽을 만지고 깨금발로 달아나는, 나의 아름다운 동상들
나이를 한 살씩 한 살씩 따먹으면 두 발로 걸을 수 있다지만
어쩌자고 모두 술래가 되려고 작정을 했는지
눈먼 팔로 빛살을 한 뼘씩 뜨개질하지만
달팽이는 더듬이를 잘도 숨기고 방아깨비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잘만 튀어 오릅니다
촉진(觸診)이냐 문진(問診)이냐 그것이 문제는 아닙니다
나의 아름다운 동상들, 별들이 느릿느릿 자전을 끝마치고 죽어가는
새벽빛 속에서 나이면서 내가 아는 모든 당신들을 불러 모읍니다
저 캄캄한 긴 긴 해안에는 침몰한 배 한 척이 있고
뼈다귀만 남은 갑판 위에는 알 수 없는 가수와 노래가 살고 있다고 칩시다
술래는 여전히 당신이 사는 별을 향해 운석을 날리고 있겠지요
마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흩뿌려놓은 빵가루처럼
느릿느릿 자전을 끝마치고 죽어가는 새벽빛 속에서 이제는 아침을 차릴 시간
술래가 되는 일은 잠시 잊고 집으로 돌아가 식탁에 놓인 꽃병에 바람을 꽂아두고
얼어붙은 차디찬 공기로 밥그릇 국그릇을 마저 닦아야겠지요
거울을 향해 환대를 베푸십시오
눈먼 팔로 빛살을 한 뼘씩 뜨개질하며 술래의 따뜻한 스웨터를 마련하세요
더는 잃을 것도 찾을 것도 없어요, 나의 아름다운 동상들
모두가 술래인 나라에 술래잡기는 없기 때문이지요
아무도 죽지 않는 나라에서는 염장이마저 굶어죽고
당신의 살인자마저 살해당하는 나라에서는 누가 노래를 끝마쳐야 하나요?
나의 아름다운 동상들, 우리의 영혼은 짐승의 냄새를 경작하고 있습니다
파도가 끝나는 곳에 구름이 구름이 끝나는 곳에 바람이 일듯
소금호수를 걸어간 파리한 사나이
제 피의 농도를 가늠하며 피눈물을 한 방울씩 떨구네요
묽게 더 묽게…… 스미라고 숨으라고…… 꼭꼭 숨어 영영 이 나라를 떠나라고

신동옥
2001년 《시와반시》로 등단.
시집 『악공, 아나키스트 기타』, 『웃고 춤추고 여름하라』, 산문집 『서정적 게으름』 등이 있음.

두 마리의 물고기로 얼어붙은 ‘우리’
신동옥을 처음 만난 건 2001년 봄, 신학기가 개강한 왕십리 뒷골목 당구장에서였다. 당구 치는 도중에 슬쩍슬쩍 흘려본 그는 당구에는 관심이 없고 멀찍이 떨어져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이번 학기에는 기지바지 입고 시 쓰는 희한한 녀석이 복학할 거야.”
그날 나와 당구를 친 친구가 개강 전에 해 준 말이다. 그날 신동옥은 기지바지 밑에 단화를 신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가 책 읽을 곳을 찾아 당구장에 드나들 정도로 희한한 성향을 가졌던 건 아니었고, 그 친구와 같은 동아리 소속이라 얼떨결에 그곳에 섞여 온 것이었다. 오기는 왔는데 당구에는 별 흥미가 없어서 책을 읽으며 게임이 끝나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물론 친해진 뒤에는 편을 나누어 치는 당구에 가끔 끼어 당구 족보에도 없는 샷으로 자기도 모르게 경기를 끝내는 기상천외한 짓을 꽤 자주 하기는 했다. 그럴 때 그는 주로 나의 편이 아니었다.
복학한 동기들이 꽤 많이 있었을 텐데 신동옥에겐 특별히 친한 친구가 없는 것 같았다. 강의실, 도서관, 동아리방만 왔다 갔다 했다. 편하게 이야기 주고받는 서너 명이 모두 그 동아리 소속이라 나도 그곳에 자주 드나들었다. 그러다가 외통수에 걸린 듯이 그와 가까워지고 말았다. 동아리방에는 기타가 한 대 있어서 함께 시간을 고장 내기 좋았다. 그곳엔 ‘들적이’인가 ‘날적이’인가 하는 노트도 한 권 있었는데 어느 날 펼쳐 보면 신동옥이 쓴, 다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글이 누워 자곤 했다. 그리고 그는 매직으로 김종삼의 시를 옮겨 적은 커다란 전지를 동아리방 앞에 붙여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읽히기도 했다.

▲ 「Sorrow」(『악공, 아나키스트 기타』, 랜덤하우스, 2008.)
2학기, 시 창작 첫 수업이 열리기 며칠 전이었던 것 같다. 동옥은 내게 그의 창작 취향을 드러내는 시 한 편을 보여주며 어떠냐고 물었다. A4 속에는 길이와 폭이 같은 그림과 글이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다. 나는 물었다.
“야, 근데 왜 제목이 없어?”
“그림이 글의 제목이고, 글이 그림의 제목이에요.”
“신동오~~~ㄱ, 그럼 시집 목차에는 그림을 넣을래, 글을 넣을래?”
강의실에서 동옥의 대답을 들은 이승훈 선생님의 말씀이었다.
시 창작 수업이 있는 날은 꼭 둘이서 술을 마셨다. 죽도록 마셨다. 시 이야기를 시작하면 그가 입이었고 나는 귀였다. 그에겐 들어줄 사람이, 내겐 들려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다. 본연의 임무를 달성하고야 말겠다는 충성스런 입과 귀. 일방적으로 보이기 쉬운 이 모습을 옆에서 보기가 힘들었는지 한번은 처음 보는 여학생이 비틀거리며 다가와 꼬부라진 혀로 “아니, 이 사람이 무슨 잘못을 했기에 친구끼리 그렇게 구박이세요? 너무하시는 거 아니에요?”
그의 삶은 단순했다. 읽고 쓰고 논하고. 그해 겨울 그는 아주 긴 제목의 시로 모 잡지 신인상을 거머쥐며 문단에 나갔다. 등단 소식을 들은 날, 둘이 주머니를 탈탈 털어 모은 돈이라곤 채 2만 원이 되지 않았다. 고등어를 구워 파는 종로 막걸리집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그가 자란 순천에서처럼 술값으로 시를 받아주는 가게는 서울에 없었다. 1차로 끝내기엔 아쉬웠다. 가까스로 돈을 남겨 소주와 새우깡을 사들고 천도교당 앞뜰에 앉았다. 비가 온 뒤였다. 참으로 시리고 맑은 소주였다.

▲ 등단 소식을 접한 직후의 기념사진
…… 비가 그칠 때마다 기온은 5도씩 떨어지고 하늘은 5킬로미터씩 푸르러지고 희망은 광속으로 달아나버려요
…… 술 한 병 더 시켜도 되겠군요 이렇게 시를 쓰는데 술값이 문제인가요 희망에 대해 얘기해 달라구요 너무 늦은 거 아녜요 세사르 바예호는 파리에서 굶어 죽었어요 제 시도 언젠가는 굶어 죽겠죠 하수구를 찾아 흘러가겠죠 당신이 즐겁게 읽어주세요
…… 계산하려면 아직 3천 원어치는 더 써야 하는데 어제 쓴 시 중에 이건 어때요
술 취한 달 / 고통의 꽃으로 피어오르고 / 나 홀로 / 삶의 까만 술병 주둥이를 항해 자맥질
이 정도면 되겠군요. 2만 3천 원 싸죠 다음은 다음은 어딘가요 제가 시를 쏘죠
―「계산서」(『악공, 아나키스트 기타』) 부분
그는 확실히 내게 시 쏘는 걸 좋아했다. 그가 쏜 시들은 내게 인과관계에 있는 두 개의 생장점을 중심으로 줄기와 가지를 뻗어가는 것으로 보였다. 그것은 가족사 벗어나기와 이를 대체할 관계 맺기라고 할 수 있다.
신동옥은 전남 고흥 출신이며 한때 증조할아버지까지 4대가 함께 살았던 집안의 장손이다. 그는 순천에서 고등학교를 다녔으며 대학을 다니기 위해 홀로 서울에 올라왔다. 그는 친척 집에서 하숙을 하다가 군대에 갔고 군대에서는 작전병인가 정훈병인가로 복무했으며, 복학한 뒤에는 청량리 부근에서 두 여동생을 데리고 자취했다. 이 정도가 신동옥의 시를 읽을 때 대입해 보곤 하는 그의 이력이다.
그의 시 「성묘」를 보면 세대 간의 불화를 단순 명료하게 전달하는 “유전은 밥상머리의 난투극”이라는 구절 뒤에 “내 증조할아버지는 아흔둘에 노환으로 죽었다 평화롭게. 내 할아버지는 여든여덟에 노환으로 죽었다 평화롭게. 내 아버지는 예순을 맞았다 평화롭게.”라고 쓴다. 그러고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이 무뚝뚝한 항렬(行列)의 연쇄.”라고 쓴다. ‘무뚝뚝한’이 ‘평화롭게’를 부연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시의 ‘평화’는 강압적인 질서에 짓눌려 순종하는 상태라는 의미로 읽힌다. 짓눌려 순종하니 무뚝뚝할 수밖에 없다. 전해 들었으면 좋았을 항렬의 연쇄를 직접 체험한 시인의 내면에는 가족 안에서는 격렬하고 죽음으로 가는 편도 위에서는 무기력한 아비들의 삶에 대한 혐오가 남았을지도 모르겠다.
생물은 생장 환경이 좋은 곳을 찾아 번식을 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인간에게 단 한 번이라도 그러한 곳을 찾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신동옥은 좋지만은 않았을 생장 환경 속에서 4대가 모여 사는 집안의 장손으로 살면서 선친들이 죽음에 이르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며 자신에게 갑작스레 생긴 그들을 닮아버린 모반까지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비 처용을 때려죽이고 실종된 오이디푸스”처럼 그 항렬에 구멍을 내거나 항렬을 걷어내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의 아비들은 처용이 아니고 그 역시 오이디푸스가 아닐뿐더러 그 역시 항렬 내부의 잠재적인 아비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시에 로댕의 〈칼레의 시민들〉을 옮겨 붙이고 그 밑에 “성묘 길의 신동옥 씨와 그 아비들”이라는 캡션을 달아 갤러리에 걸어두는 방법으로 항렬을 훼손하지 않고 월담한다.
하지만 서울에서의 대학 생활이 그다지 순탄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학문도 부질없고 시도 재미없던 시절이 있었던 듯하다.
국문학사는 역겨워 그곳으로 돌아갈 순 없어. 시가 재밌나? 내겐 잡음처럼 지지직거리는 게, 등짐을 지고 호이스트카를 타고 철망 너머 하늘에 눈을 담그고 오르락내리락 그런 기분, 캠퍼스에서 내가 배운 것은 대머리 대통령들의 순환 주기와 혁명 계보로 기운 러시아사였다.
―「위경(僞經)」(『웃고 춤추고 여름하라』, 문학동네, 2012.) 부분

▲ 일렉트릭 레이디 랜드로 떠나기 직전의 동옥
이 시절을 외전으로 떼어내고 그가 선택한 삶의 방법은 자신의 청자, 즉 2인칭의 대상을 물색하는 일이었던 것 같다. 연고가 없으므로 서울에서는 고아였던 그로서는 시 속에 동상으로 세워둔 가족 공동체를 대체할 새로운 공동체가 필요했을 법도 하다. 가족이 아닌 공동체, 무성 접촉의 공동체, 심장에서 가까운 왼손으로 악수하는 공동체(동옥은 심장에서 가까운 왼손으로 악수하자는 지미 헨드릭스의 말을 좋아했다.). 하지만 「도무지들」 같은 시에 나오는 “더 이상 친구가 없어”라는 구절을 보면 그가 지속적인 러닝메이트가 될 만한 2인칭을 동시대 동년배에서 찾는 데에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심금(心琴)」이라는 시에는 베를렌이 왜 하필 내가 여자였으며 화자인 ‘나’가 왜 하필 내가 남자였는지 후회하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 구절에서 화자의 인식은 왼손으로 나누는 악수가 불가능하다는 데 닿아 있다. 두 손의 결합은 무성 접촉이지만 통념은 두 손에 각기 다른 성적 역할을 덧씌워 마치 유성 접촉을 하는 관계로 갈라놓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그가 꿈꾸는 공동체 결성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예감한 그는 그의 화자를 악공의 나라, 저 깊숙한 일렉트릭 레이디 랜드로 보낸다. 그즈음 그의 취생몽사가 극한을 향해 치달았던 것 같다. 그는 술독 위에서 춤추는 두 발바닥으로 현실에 없는 2인칭 요철들을 그의 머릿속으로 밀어 떨어뜨려 자신의 현실을 재구성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그의 작품에 나오는 수많은 작가들, 화가들, 음악가들과 그들의 작품들. 하지만 이번에도 그의 시도는 완전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한다. 테트리스 게임처럼 요철을 받아 다진 평평한 땅은 다지자마자 사라지는 땅이었고, 평평한 땅을 만들고 남은 요철의 조각들이 1인칭을 변모시켜 이에 걸맞은 새로운 2인칭 요철들이 끝없이 필요했을 테니까 말이다. 그가 꿈꾸었을 공동체는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물고기 두 마리가 있다. 한 마리는 얼음물고기 나머지 한 마리도 얼음물고기다. 한 마리는 곧 얼어붙을 물고기이고, 나머지 한 마리는 곧 녹을 물고기이다. 한 마리는 악몽을 피해 얼어붙을 얼음물고기이고, 나머지 한 마리는 헛된 믿음에서 깨어날 얼음물고기다. 첫 번째 물고기는 “물고기 또는 물고기라는 투명한 이름들” 중 하나이며 “물고기 또는 물고기의 몫으로 마저 불러주어야 할 믿음들” 중 하나이다. 어느 것을 택해서 읽든 상관없다. 어차피 경계가 모호하다. 물고기는 강가에 있다. 얼어붙은 강가, 추운 강가, 머나먼 강가다. 물고기는 지쳐 있다. 몸의 반은 물속에 얼어붙은 채로, 반은 물 밖에서 오들오들 떨며 등지느러미를 파들대고 있을 것 같은 모양새다. 아가미엔 비늘이 붙어 있지 않다. 화자는 ‘아가미에 비늘이 없는 물고기’에서 ‘아가미에서 떨어져 나간 비늘이 어디까지 떠내려갔는지’로 관심을 넓히며 시선을 산개한다. 아가미는 물고기의 일부이고 아가미를 감쌌던 비늘도 물고기의 일부이다. 일시에 모든 것이 얼어붙지 못해 물고기를 흘리는 것, 그것이 신동옥에겐 난폭한 악몽이었을 것이다. 난폭한 악몽을 피하는 방법은 ‘비늘 하나의 손실 없이 물길을 거슬러 물길이 되어 얼어붙는’ 믿음이다. 하지만 상처 없이 흐름을 거스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것은 헛된 믿음이다.
두 번째 물고기는 지느러미처럼 얼어붙었거나 한 송이 수초처럼 얼어붙은 물고기다. 정확하게 어떤 물고기인지 모르겠다. 다만 자신의 몸속에 갇힌 기포 속에서 트이는 한 점의 빛살을 얻고 있다는 점에서 기포 속에 남은 숨을 들이켠 첫 번째 물고기와 같은 물고기라 추정할 수 있다. 봄이 왔는가 보다. 무수히 많은 빛살의 입자들이 깃을 친다. 물이 풀린다. 강바닥에 얼어붙었던 돌들이 깨어난다. 여기까지는 좋다. 갑자기 아가미와 아가미가 맞닿는다. 물고기가 한 마리가 아니라는 소리인가. 첫 번째 물고기에서는 꼭꼭 숨어 있던 화자가 두 번째 물고기에서는 “우리가 우리의 헛된 믿음으로부터 우리의 몸뚱이를 회복하는 데 소용되는 결정의 시간”으로 부연된 얼음물고기의 의미 속에서 ‘우리’라는 집단 화자로 드러난다는 점에 비추어 몸을 회복한 물고기는 한 마리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우리’라는 집단 화자를 이해하기 위해 음의 세계를 생각해 보았다. 현 위의 C는 C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세히 들어보면 C 주변의 미세한 음들과 섞여 있다. C 안에서 순간적인 주변 음들과의 섞임은 비트 속의 언어로 말하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모든 것들은 가능할 때까지만 지속”되는 관계이고, “지속하는 매순간마다 불가능으로 한 발짝씩 다가”서는 관계이다. 첫 번째 물고기는 한 음이 되기 위한 어울림이 끝난 상태, 어울림의 공동체가 파괴된 상태, C 이외의 음들이 떠내려간 상태에서 C로만 얼어붙은 물고기일 것이다. 두 번째 물고기는 이러한 C가 녹아 다시 주변의 소리들과 조우하는, 아가미와 아가미를 부딪는 물고기들일 것이다. 그래야 ‘우리’라는 집단 화자의 등장이 가능해진다. ‘우리’는 “나이면서 내가 아는 모든 당신들”(「나의 아름다운 동상들」)인 셈이다. ‘우리’ 그 자체로 얼어붙고 싶지만 결빙의 순간 ‘우리’는 ‘나’로 개별화되어 헛된 믿음이 깨어지고 해빙의 순간 ‘우리’의 몸뚱이가 회복되는 것이다.
어쨌든 해빙이다. 물길은 물고기가 얼어붙기 전의 방향으로 흐를까, 물고기가 얼어붙은 방향으로 흐를까. 관계없다. 물이 어느 방향으로 흐르든 물고기에겐 고단할 뿐이다. 결빙과 해빙이 들숨과 날숨처럼 반복될 것이고 신동옥의 관계 맺기 조율은 끝이 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항렬의 연쇄를 지배하는 법칙은 갤러리 속에서도 완고하고 그 영향력은 지속된다. 그리하여 비트 속에서도 “나는 아버지의 이불에서 태어났고 아버지는 어머니의 배에서 태어났다.”(「비트 5」)처럼 항렬의 순차성을 교란하는 표현이 등장한다. 항렬을 넘어왔지만 그것으로부터 완벽하게 벗어날 방법이 없는 신동옥 시의 화자는 항렬 밖에서 심장 중심의 공동체 결성에 일시적으로 성공하고 지속적으로 실패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것이 반복된다. 반복이 다행인 이유는 상황의 반복이 결과의 반복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끊임없이 미지의 도무지들에게 왼손을 건넬 것이며 그가 내민 왼손이 작전지도가 필요 없는 비트 밖으로 그를 이끌 것이다.
당신,
오직 당신이면 된다.
비트 밖에는 무엇이 있어도 좋다.
배든, 사막이든, 남양(南陽)이건, 달의 뒤편이건……
―「총구에는 나비; 비트 15」(《시인불멸》, 2015. 4월호) 부분
글 · 박장호 | 2003년 《시와세계》로 등단. 시집 『나는 맛있다』, 『포유류의 사랑』이 있음.
웹진 월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5.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