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 저자 | 홍일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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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 이야기
한 줄의 문장이 빨랫줄에 걸려 있다
더 이상 발설할 것이 없을 때까지
하얗게 마른 문장이 백골로 남을 때까지
지상 밖을 떠돌던 휘파람 날린다
축축하게 젖어 가라앉던 한때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 못 이루던 날들
멀리 있는 이야기들이 걸어오는 중이라고 말한다
그게 최선인 듯
그게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인 듯
빨랫줄에 걸려 서걱서걱 얼어붙던 어느 날
옥상에 올라 터진 손발을 어루만지고 있는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
얼었다 풀렸다 하는 사이
내 안에 흐르던 저녁
내 안에 흐르던 당신
건너편 옥상에도 젖은 오후가 마르고 있다
어둡게 스미던 그늘을 털어내고
고드름 속에서 겨울이 모르는 계절을 살다 간다
가장 가벼운 슬픔
깨끗한 순백의 죽음에 당도하여
희게 빛나는
멀리서 눈부신 손 하나 펄럭이고 있다

홍일표 ㅣ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살바도르 달리풍의 낮달』 『매혹의 지도』 『밀서』, 평설집 『홀림의 풍경들』이 있음.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8년 2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