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 저자 | 박은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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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전하는 불운
어제까지도 괜찮았는데
울창한
체리나무 숲에
웅크린 짐승들처럼
우리는 말이 없다
교훈으로 병든 얼굴을 버리자
배낭에 소주 두 병을
비밀무기처럼 장전한 채
유령보다 투명한 마음으로
투명한 파도를 보는 유령처럼
해가 지기도 전에 취한 니가
내뱉는 말들을 바람에 흘려보낸다
이대로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갈라지는 나뭇잎과 스러지는 나뭇잎과
그럼에도 아무 소리 내지 않는 나뭇잎을
지그시 바라보는 동안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우리는 여기 남았다
현기증이 날 때까지
죽도록 뜀박질을 하면
다시 취할 수 있을 거야
너는 배낭에서 숨겨둔
소주 한 병을 더 꺼내고
나는 뒤돌아보았다
고요히 회전하는 불운들을
오늘만 아니라면 어디든 상관없지
지나치도록 멋진 나무와 파도를 지나
다시 지나치도록 멋진 나무 아래
한 영혼에게 개가 찾아와
가만히 우는 날처럼
바스락거리는 심장을 쥐고
우리는 더 멀리 걸었다

박은정 ㅣ
2011년 《시인세계》 등단. 시집 『아무도 모르게 어른이 되어』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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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7년 2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