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 저자 | 김인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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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휴가
날짜들 속에서
붉은 숫자들이 불탄다.
풋과일 속을 들락거리는 햇살들
눈을 찌르는 햇살을 모자처럼 쓰고
풋과일들은 스스로
만삭이 되어간다.
붉은 휴가를 깔고 앉아
압박하는 날짜들을 헤아리다 보면
갈 곳도 가야 할 곳도 없는 망명지들은
쇄국으로 문을 닫아 건 지 오래라는 것.
山이라도 오를 수 있다면,
꿈속으로 날아오르는 새를 꿈꿀 수 있을 텐데
날개의 품종들을 고를 수 있을 텐데.
치미는 구토 속에
하늘과 낭떠러지가 뒤섞여 있다.
완벽한 계산 앞에서
거스를 수 없는 계절이 내게 묻는다.
똑같이 가파른 두 개의 길
붉은 눈총을 장전할 것인지
오래 비워둘 내 의자를 빙글빙글 돌릴 것인지.
중심을 잃고 뒤뚱거리는 다리와 휠체어가
얼굴을 맞대고
측은한 염색체를 공유한다.
풋과일들은 모두 달콤한 만삭 속에
그 씨를 숨겨놓는다.

김인숙 | 강원 강릉 출생. 2012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제6회 〈한국현대시인협회 작품상〉, 제7회 〈열린시학상〉 수상.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6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