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 저자 | 박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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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국수
분지의 여름밤에는 바람이 없습니다 밤이 되어도 화기(火氣)가 가시지 않을 것 같아 저녁밥을 안치는 대신 메밀국수를 사먹고 돌아왔습니다 동송으로 가면 30년 된 막국수집이 있고 갈말로 가면 60년 된 막국수집이 있는데 저는 이 시차를 생각하며 혼자 즐거웠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 말한 제 아버지는 60년 동안 술을 마셨고 저는 30년 동안 술을 마셨습니다
돌아오는 길, 문밖으로 나와 연신 부채질을 하던 이곳 사람들은 하나같이 저에게 저녁을 먹었는지 물었습니다 국수를 먹었다고 대답하기도 했고 몇 분에게는 웃으며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옆집 할머니께는 입맛이 없어 걸렀다고 답했다가 “저녁은 저녁밥 먹으라고 있는 거지”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주말에 큰비가 온다고 하니 이곳 사람들은 그전까지 배추 파종을 마칠 것이고 겨울이면 그 흰 배추로 만두소도 만들 것입니다 그때까지 제가 이곳에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요즘은 먼 시간을 헤아려보고 생각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럴 때 저는 입을 조금 벌리고 턱을 길게 밀고 사람을 기다리는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천천히 돌아와도 된다는 듯 눈빛도 제법 멀리 두고 말입니다

박준
1983년 서울 출생. 2008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가 있음.
웹진 월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5.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