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신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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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신동호 

   

  

 

 

 

 버라이어티 쇼

  ― 나는, 시를 언어에서 출발하지 말고 ‘시적인 것’의 발견으로 출발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한 적이 있다(황지우, 1984).

 

 

 

 

불안  

 

2008년 2월이었어요. 남대문이 불탔어요. 노인은 오랜 카드 빚에 시달리다가 불을 내기로 마음 먹었다고 해요. 노인이 방화범이 되기까지, 조촐한 자리,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는 이랬어요.

 

“그때 말이야, 경복궁을 복원한다고 광화문 앞 해태 두 마리를 민속박물관에 옮겨놨어. 해태는 불을 먹고사는 동물인지는 알지? 삼봉이 조선을 건국하고 한양을 도읍으로 정할 때 관악산 산세가 도성에 불을 일으킬 거라고 걱정했다는 이야기가 있어. 그래서 두 가지 조치를 취했는데, 하나는 남대문 현판 ‘숭례문’을 세로로 써서 올린 거야. 그게 화기(火氣)를 누를 수 있다고 생각한 거래. 하나는 광화문 양쪽에 해태상을 세워 불을 잡으려고 한 거지. 생각해봐. 노인의 머릿속에 그 이야기가 오래도록 각인되었다 쳐보자고. 옛날 분들은 다 아는 얘기니까. 해태를 치웠다는 기사를 보자 관악산이 떠오르고, 남대문이 떠오르고, 불타는 도읍이 떠올랐을 거야. 그때부터 불이 날까 불안해진 게 틀림없어. 근데 지루하게 불은 나지 않았고 말이야. 그러다가 자기도 모르게 휘발유 한 통을 사고, 사다리를 준비하고. 그렇게 남대문이 결국 불탄 거야. 불안해서 불을 냈다 했으면 요즘 사람들 누구도 믿지 않을 거야. 카드빚이 훨씬 앞뒤가 맞으니까, 그렇게 끝난 거야.”

 

뒤져보니 그때, 진짜 해태는 민속박물관에 있었네요. 프로이트가 그랬어요. ‘가질 수 없는 것을 갖는 방법은 그것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무슨 상관이냐고요?

    

연결 

 

약간의 활자중독이 있어요. 내무반에 책이 한 권 있었는데, 『황강에서 북악까지』, 전두환 평전이었어요. 한동안 안 읽고 잘 견뎠어요. 치약에 써 있는 성분표도 읽고, 심지어 군복에 붙어있는 태그, 복무규정을 또 읽고 읽고 했어요. 그러다가 결국 중독에 굴복하고 말았어요. 되도록 성의 없이 천천히 읽다가 한 구절에 꽂혔어요. 전두환이 중령 때였나 봐요. 서울 고층빌딩 옥상의 대공포대 대대장이었대요.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 습격을 위해 남파되기 한 달 전, 전두환이 느닷없이 청와대 쪽으로 조명탄 발사 훈련을 실시했다는 거예요. 평전을 쓴 인간이 전두환을 ‘예지력 있는 장군’으로 칭송하려고 넣어둔 에피소드였어요. 청와대 쪽으로는 포신만 돌려도 반역죄로 처벌받는대요. 이것도 아주 친절하게 적어놓았고요. 전두환이 반역자가 될 것을 무릅쓰고 청와대 쪽으로 조명탄 발사 훈련을 실시했다, 참 극적이죠. 그때 책 한 권이 생각났어요.

 

좀 억지스러운 연결일지 몰라요. 복거일이라고, 나중에 영어공용화를 주장했던 소설가 있잖아요. 요즘은 조용하시네요. 어찌 되었든 가상 역사를 다룬 장편, 『비명을 찾아서』는 참 대단한 소설이에요. 거기, 김신조 사건 이후 박정희가 향토예비군을 창설하고, 교련교육을 시작한 이야기가 나와요. 전쟁을 겪으면서 많은 청년들이 군 장교로 들어왔고, 모두 제대를 해야 했던 시기랑 맞물렸다는 거예요. 전국의 예비군 중대장, 교련 교사가 전부 얼마나 될까요. 김신조 사건으로 예비역 군 장교들의 실업 문제를 일거에 해소했다네요. 대단해요. 계획된 일일지도 모른다는 주장은 절대 아니랍니다. 자하문 곁에서 그때 순직한 경찰의 동상을 보았어요. 진심으로 애도했습니다.

   

산불  

 

처음엔 우연인 줄만 알았다니까요. 2017년 5월, 우리 집 바로 뒤편 수락산 자락에서 불이 났어요. 그날 한 신문사 기자와 저녁을 먹다가 TV로 속보를 보았어요. “우리 집 뒤인데” 했더니, 얼른 가보라는 거예요. 택시를 탔죠. 그런데 기다렸다는 듯 이메일이 한 통 왔어요. 발신자가 ‘청와대 상황실’이라니. 깜짝 놀랐죠. 제가 대통령 비서실 일을 시작한 지 열흘도 안 된 때였거든요. 상황실이 참 일도 잘한다, 참 친절하다, 생각했다니까요. 메일을 열어보는데 비밀번호를 넣으라 하고. 좀 복잡했지만, 청와대니까 그러려니 했어요. 추호의 의심도 없었어요. 그런데 냉무. 수락산에 도착했는데, 옆 동네 소방차까지 다 왔는지 난리도 아니었어요. 다행히 산 아래 집들에 피해는 없었고요. 그런데 말이에요. 다음날, 청와대 여민1관 연설비서관실로 낯선 분들이 찾아왔어요. “북한에 해킹당하셨습니다.” “뭐라고요?” 국정원 요원들이었어요. 자리에 앉아서 제 핸드폰 앱을 이리저리 열어보고, 메일 비밀번호를 바꾸고, “이제 되었습니다” 하는 거예요. “아니, 제가 해킹당한지 어찌 알았어요?” 그분들의 답변은 생략이에요. “쟤네들이 제 메일주소는 어찌 알았어요?” 이 물음에 대한 대답도, 궁금하시겠지만, 물론이고요. 아무튼 그때부터 국정원을 신뢰하게 된 건 사실이에요. 안기부에서 고문받았던 기억을 싹 지우고 말이에요.

 

그러고는 일 속에 묻혀 잊었다가 갑자기 ‘북한 애들이 불을 냈나? 설마 나 같은 사람 하나 해킹하려고?’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뒷산 불난 곳을 지나다 보니까 그리 큰불도 아니었어요. 드문드문 나무들도 살아나고 있었고요. 참 지극정성이다, 이런 느낌이 들고, 에이 그럴 리가 없어 했는데, 요즘은 약간 확신으로 바뀌었어요. 모두 조심하세요. 국정원은 제발 불법계엄에 동조하지 마시고요. 아이고, 어쩌면 국정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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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호  ■ 

1984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겨울 경춘선』 『저물 무렵』 『장촌냉면집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 『그림자를 가지러 가야 한다』, 산문집 『분단아 고맙다』 『세월의 쓸모』 『대통령의 독서』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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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1월호(VOL.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