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 저자 | 김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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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이유
오래 비가 내렸다
습관처럼 바다에 나갔다
항구로 배가 들어오고 있었다
저 멀리 섬에서 오는 배였다
저들도 대처로 나와야 할
각자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파도가 거셌다
바람이 몹시 불었다
같은 옷을 맞춰 입은 연인도 있고
갓난아이를 유모차에 태운 젊은 부부도 있었다
서리를 머리에 이고 있는 노인들도 있었다
모두가 각자의 이유로 방파제에 나온 것이다
죽고 싶다는 문자를 보냈다
장난을 가장해 듁고 싶다고 썼다
그것도 쉽지 않아, 라는 답장이 왔다
사는 데는 각자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따금 가슴이 저리고
목이 메어왔다
치사량의 슬픔은 아니어서
이를 감춰야 할 이유가 있을 것이다
뒤돌아 인간의 불빛을 보았다
바다를 향해 잇대어 서 있지만
건널 수 없는 바다가 있다
그리워할 수도 부를 수도 없는
각자의 사연이 있을 것이다
등대 주위의 한 무리의 노인들은
돌아갈 이유가 없다는 듯
어스름에도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들은 시간이 두렵지 않은
각자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김 겸 ■
2002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하루 종일 슬픔이 차오르길 기다렸다』 『바로 그 어둠의 심연이었네』, 장편소설 『여행의 기술―Hommage to route7』, 평론집 『최소주의자의 윤리』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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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1월호(VOL.1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