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 저자 | 박완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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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망명
우리는 사과나무 언덕에서 쫓겨난 자들, 그날 천국에서 지옥으로의 탈주는 애플파이처럼 달콤했네
뱀 물린 자리를 동여매고, 아랫도리를 가린 나뭇잎을 가끔 부는 바람에 나풀거리며, 발 딛는 데마다 지옥이 되고 마는 주문이 까닭 모르게 이루어지는 순간들을 지나 다다른 곳
어제까지의 기억을 지우고 새로운 다짐을 불립문자로 새겨가며 여기를 떠나 저세상으로 가는 발길을
망명이라고, 천국에서 지옥으로 떠나오던 날처럼 이제는 지옥으로 바뀌었을 곳으로 되돌아가는 우리를 망명자라고 부르자고 했네
이제 더는 쫓겨날 일 없이, 망명지로 가는 길목을 지키고 선 사자들에게 가벼운 농담이라도 건네며
이곳에서의 삶이 소풍 같은 나날만은 아니었다고 넌지시 말해주고 싶네 나보다 먼저 그곳으로 떠나간 이들에게
사랑이라는, 그립다는 말 대신
거기 그대로 있으라고만, 그렇게
그리운 지옥으로 돌아가는 발소리가 신의 귀에 닿지 않도록 가만히 다가가고 싶네

박완호 ■
1991년 《동서문학》 등단. 시집 『나무의 발성법』 『누군가 나를 검은 토마토라고 불렀다』 『물의 낯에 지문을 새기다』 등이 있음. 〈김춘수시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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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호(VOL.1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