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신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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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소란 

   

  

 

 

 

 밤의 아름다움

  

   

 


   

  밤이면 나는 귀신처럼 떠돈다, 중얼거리자

  순간 진짜 귀신이 된 기분

  빨간불의 횡단보도도 척척 건널 수 있을 것 같지

  한 걸음 한 걸음

  눈앞의 자동차들이 푹신한 보닛을 펼쳐 날아간다

  저기요,

 

  저기요, 큰일 나요,

  뒤통수를 끌어당기는 날 선 소리에 귀신은 놀라고

  아직 여기 있으면 안 되잖아요

  그런 충고 앞이라면 언제나 할 말이 없고

 

  밤은 아름답다 검은 옷이 잘 어울린다

  내가 아는 사실은 그뿐

  나는 어디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미처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귀신이란 대체로 그렇듯이, 생각하면 좀 낫다

 

  사람이 하나둘씩 사라진다 보이지 않는 골목 끝으로

  자정의 담벼락 너머로

  집으로 돌아갔다 마침내, 생각하면 역시 좀 낫지만

 

  귀신의 생각 따위

  버리기 위해 걷는다 이따금 달리기도 한다

  주먹을 쥐고 몸을 바르르 떨면서

  귀신이

  귀신을 떠날 때까지

 

  문을 닫지 못한 상점과 그 앞으로 사뿐히 다가선 택시 한 대

  예약, 이라는 두 글자

 

  꼭 귀신도 태워줄 것처럼 먼 데로 데려다줄 것처럼

  밤은 아름답다 그러나

  그러나

 

  빽빽한 건물들 사이 울려 퍼지는 사이렌의 울음과

  울음을 향해 잠시 멈춘 발걸음과

  바스락거리며 발밑을 간지럽히는 한 봉지 빛과

 

  밤은 아름답다 그러나

  밤은

  빈 쇼윈도마다 불쑥 솟아나는 낯익은 얼굴

  귀신처럼

 

  나는 놀란다

  아 깜짝이야, 중얼거리자 순간

 

 

 

 

 

 

 

 

 

 

 


 

신작시_박소란.jpg

박소란  l

2009년 《문학수첩》 등단. 시집 『심장에 가까운 말』 『한 사람의 닫힌 문』 『있다』 『수옥』, 산문집 『빌딩과 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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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호(VOL.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