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이가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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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런스 게임
초콜릿 우유가 나오는 정수기 이야기
환상의 나라는 생각보다 가까이 있고
달콤한 정수기는 금방 끈적해져
닦아도 닦아도 자꾸만 붙잡고
안에 뭐가 들어 있을지 몰라서
다 보이는 투명한 물만이
우리 곁에 남게 된다는 진실
가득 찬 물 잔을 보고 누군가는 손뼉 치고
누군가는 불안해해
조금만 실수해도 바로 무너져 버리잖아
뭐든 극단으로 질문하는 것이 요즘의 유행
바퀴벌레를 먹어서 부자로 살 수 있다면 그러하고
맛있는 밥 먹으면서 지금처럼 살 수 있다면 그것도 그러한데
나는 중간에서 어정쩡하게 고개를 갸웃거린다
대답이 현실을 만들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그 조금의 가장도, 그 약간의 가상도
무섭니?
건네주는 물은 항상 모자라다
가득 따라주면 분명
서로의 손을 적실 거니까
손을 탈탈 털며 옷에 닦아낼 때
금방 젖었다가 사라지는 마음처럼
웃으면서 넘길 수 있는 것도
어쩌면 여기까지
마시고 모자라면 또 마시면 되잖아,
간단한 답을 빙빙 도는 건
물컵 속 벌레가 치는 헤엄의 궤도
밸런스 게임 시작
벌레 든 물 마시고 십만 원 받기
아니면 벌레는 건진 채 마시고 삼만 원 받기
우리는 결국 스며들게 만들어진 거 같아
물을 오래 머금고 있으면
눅눅해지다 결국 울어버리는
종이컵처럼
근데 어떤 벌렌데? 벌레에 따라 다르지
양손 가득 들고 조심히 걸어본다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에는
나밖에 없지만
친구는 고맙다며 잔을 건네받는다
주고받는 손끼리 닿지는 않고
우리는 마주 앉아 일어나지 않을 이야기를
이미 일어난 일처럼 이야기할 때
저 멀리서 폭탄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무언가 몰려온다
친구는 웃으며
여기서 탈출하기 아니면 밥이나 먹기

이가인 l
2024년 《시작》 등단. 공저 『지구 밖의 사랑』이 있음. 〈행성〉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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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호(VOL.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