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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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여정 

   

  

 

 

  적포도주, 얼룩말 그리고 이후……

  

   

 

 

 

   횡단보도에서 방금 태어난 나는… …,

 

   꿈의 다락방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이라 인적도 차량도 거의 없었다.

 

   꿈의 다락방에서 나는 거울 속의 나와 마주 앉아 자정이 넘도록 레드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거울 속의 내가 성경 완독을 축하한다며 건배를 청했다. 나는 거울에 잔을 가볍게 부딪치며 조금은 멋쩍었다.

 

   우리는 마치 최후의 만찬처럼 떡과 포도주를 나누었다.

 

   나는 새끼 나귀에 대해 골몰했다. 거울 속의 나는 ‘가나의 혼인 잔치’의 포도주에 대해 말을 꺼내고 있었다. 예수가 물을 부어 만든 두 번째 포도주는 적포도주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였다.

 

   마침 우리가 마시던 레드와인도 점점 떨어지고……,

 

   이미 포도주에 취한 손님들이 다른 포도주인 것을 알 정도라면 색이 달랐을 거라고, 거울 속의 내가 사족처럼 덧붙이고 있었다.

 

   나는 두 번째 와인을 사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넜다.

 

   25시 편의점에서 나는 레드와인 대신 아직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화이트와인을 샀다. 왼손에 화이트와인을 들고 나는 깜빡이는 신호등을 보고 뛰기 시작했다. 중앙선 가까이 다다랐을 때 어디선가 검은색 자동차가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횡단보도에서 내 붉은 피와 화이트와인이 뒤섞이고 있었다. 흐릿해지는 의식 사이로 태초의 사람인 아담과 하와의 피가 붉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의문이 스쳐 갔다, 어쩌면 물처럼……. 거듭나기라도 하듯 나는 모든 허물을 벗기라도 하듯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오늘은……,

 

   나의 기일이자 생일이 되었다. 갑자기 화이트와인을 기다리고 있을 거울 속의 내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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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정  l 

199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벌레 11호』 『몇 명의 내가 있는 액자 하나』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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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호(VOL.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