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임유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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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와 무밖에 없는 집*
붓 사러 인사동에 갔다가 늦은 점심을 하러 개성만두집에 갔다. 만둣국을 시켜놓고 주변을 구경하며 기다리고 있자니 곧 옆 테이블에 손님이 왔다. 불어 비슷한 언어를 사용하는 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과 그 부모였다. 이들은 더운 날씨에 지친 듯했고 관광객답게 조금 소심하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소년: 저 여자는 뜨거운 수프를 먹고 있네.
남자: 여기는 차가운 국수가 없나?
여자: 점원이 불어를 할 리가 없는데. 얘, 다리 내려라.
남자: 반찬이 많이 안 나오는데. 잘못 온 거 아냐?
여자: 만둣집에서는 무료 반찬이 적게―서너 가지만 나온다고 여기 적혀있어. (핸드폰 화면을 내밀며)
남자: 흠.
소년: 다른 수프는 차가워 보이는데?
여자: 그건 차가운 김칫국이야.
소년: 우웩.
여자: 말조심.
남자: 너 똑바로 해…… 사진이 없어서 모르겠어.
여자: 쉽지가 않군.
점원: 안녕하세요? 우리 식당에는 영어 메뉴판이 있습니다.
여자: 아! 부탁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점원: 여기 있습니다. 천천히 고르세요.
여자: 세 명을 위한 메뉴를 추천해주시겠습니까?
점원: 비빔밥, 만두와 만둣국이 인기 메뉴입니다.
여자: 만두는 많이 매운가요?
점원: 비빔밥에 고추장이 약간 들어갑니다. 김치만두는 사람에 따라 맵게 느낄 수도 있습니다.
남자: 김치가 만두에 들어갑니까?
점원: 고기만두와 버섯만두에는 안 들어갑니다.
여자: 만둣국에는 무슨 만두가 들어갑니까?
점원: 소고기 육수에 고기만두가 들어갑니다.
여자: 비빔밥, 버섯만두, 고기만두를 주문하겠습니다.
점원: 네, 알겠습니다.
남자: 만둣국을 먹어야 하는 거 아닌가?
여자: 이미 다 못 먹을지도 몰라.
소년: 오! 난 목이 너무 말라.
남자: 기다려. 좀 남기면 어때서.
여자: 일단 먹어보고 시키자.
남자: 저 사람 쇼핑백에 대나무가 그려져 있잖아. 지역민들이 먹는 걸 먹어야지.
여자: 하…… 마음대로 해.
남자: 뭐, 기다려보지.
나는 만둣국의 만두를 다 건져 먹고 떡은 남겼다. 사실 떡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나박김치 국물이 시원해서 한 그릇 더 청해 먹었다. 입가심으로도 그만이었다.
식당을 나서며 저 가족이 만두를 먹고 맞은편 경인미술관 안뜰 찻집에 가는 상상을 했다. 그 찻집은 참 운치 있고 좋아 보이는데 이상하게 들어가게 되진 않아서 가본 적은 없다.
골목을 나오자 한복 입은 사람들이 가득했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Goldberg Variations, BWV 988)〉 마지막 변주에 사용된 독일 민요로부터.

임유영 l
2020년 《문학동네》 등단. 시집 『오믈렛』 등이 있음. 〈백호임제문학상 젊은 시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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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호(VOL.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