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 저자 | 피재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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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신사 형
요즘 누가 때를 밀까 싶지만
목욕탕에 갈 때마다 세신사 형은 때를 밀고 있다
거 참 신기하다
세신사 형은 처음부터 세신사는 아니었다
이 목욕탕이 문을 연 25년 전에 아직 젊던 형은
직장을 잃었고
할 일 없으면 여기 와서 때나 밀라는 그 형의 형뻘 되는
목욕탕 사장의 부름을 받고 때밀이가 되었다
경기는 천천히 회복되었지만 날이 갈수록
형의 때 미는 실력이 늘어 일부러 때를 밀러 오는 사람들까지 생기자
형은 어엿한 세신사가 되었다
새 신 같기도 하고 신사 같기도 한 세신사
나도 세신사 형에게 아버지를 부탁한 적이 있는데
여간 좋아하지 않으셔서 몇 번 더 부탁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세신사 형도 이제는 늙어 허리가 굽어 있다
딱히 정년이 있어 보이지도 않고 명퇴가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형이 이제 때를 그만 밀고 이 맑은 봄날을 살았으면 좋겠다
선크림 듬뿍 바르고 봉정사 우화루 같은 데 앉아
김밥 도시락 펼쳐 놓고 봄볕을 즐겼으면 좋겠다
평생 동안 번 때돈으로 새 신을 사 신고 신사처럼

피재현 l
1999년 《사람의문학》 등단. 시집 『우는 시간』 『원더우먼 윤채선』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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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호(VOL.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