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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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오은경 

   

 

 

 

 추워

 

 

 

 

 

   너는 움직였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자세를 낮췄다가 다시 원상 복귀. 제자리로 돌아와, 창문 앞에서 하던 일을 멈추고

   (오래된 창문을 청소하기, 아니면 블라인드를 설치하기 위해 길이 재기 내 방 창문에서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런 것에 지나지 않으니까.)

   누울 수도 있었다. 잠시 눈을 붙이거나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그러면 나는 사라졌다. 꿈에서 원하던 것을 얻을 수 있었다.

 

   너는 기억하고 있을까? (어떻게 네가 너였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을까?) 둘이 넘어졌던 일, 너를 잡아주다가 나도 함께 넘어진 일.

   겨울이었다. 빙판길에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손바닥에 피가 났다. 너는 무릎이 깨졌고. 이대로는 걷기 힘들다고 했다. 사방이 돌이었다.

   우리는 돌밭에 앉았다. 힘이 빠졌으니까. 쉬어야 했다. 작년 겨울에는 유독 넘어져 다치는 일이 잦았다. 꼭 빙판 때문이 아니더라도. 발을 잘못 디뎠다거나 하는 이유로.

 

   비를 맞아 며칠 동안 몸살을 앓기도 했다. 우산이 없었으므로. 외투 한 개를 나눠 덮어야 했다. 큰비는 아니었다. 하지만 거리가 먼 전철역까지 돌아갈 자신은 없었다.

   우리는 가까운 빌라 안에서 비가 멎기를 기다렸다. 초능력에 관해 이야기했을 것이다. 내가 지닌 신비한 힘에 대해서.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실은, 가깝지 않아도 된다. 꼭 네가 아니어도. 나는 너를 기억하니까. 지금 당장은 불러내지 못하지만. 만날 수 없지만.

 

◇

 

   기억하지? 네가 나에게 했던 말, 있었던 일을 똑같이 재현해 보라고, 한쪽 팔을 잡아당기면서 나를 데려간 장소, 공원에서 떠나기 싫었던 나는

   흙먼지 탓에 기침이 나왔고. 눈이 가려워 긁었고. 얼굴을 찌푸렸다. 주름, 나무껍질, 상처, 손등에 생긴 상처, 손톱에 낀 때, 한 움큼의 흙, 무릎에 묻은 흙. 미끄러지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움직임.

   살려달라는 외침. 살려달라고. 잘못 들은 환청. 아니, 나의 마음속 소리. 목소리. 너 없이. 너는 의미를 알 수 없는 표정.

 

   너는 멀어지는 표정, 서서히 닫히고, 굳어가는 입술, 너의 음성, 조용한 실루엣, 우리 집에는 커튼이 없는데.

   웃음소리, 햇볕 번지는 창문, 침묵 속에서. 조용한 속삭임. 나는 추워, 라고 네가 말했을 때

   추워?라고 물으면, 물어보는 데서 그치면 안 됐던 거야. 추워, 라는 말은 남으니까. 나는 흰 이불을 두르고. 진짜 유령처럼. (유령이 아닌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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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경  l 

2017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한 사람의 불확실』 『산책 소설』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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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호 신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