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김연필 | ||
|---|---|---|---|
교범
나의 알루미늄 자전거를 타고
중랑천에 가고, 살곶이에 가고, 나의 왕십리에 가고
나의 왕십리에 가서
사랑하고, 나무로 된 사랑을 하고, 플라스틱 사랑을
플라스틱 사랑에 맺힌 아름다운 나의 자전거를 타고
살곶이로, 뚝섬으로, 한강으로, 여울로, 개울로, 나의 알루미늄
물결로, 바다로, 파도로 가서 돌아오지 않고
나의 알루미늄 자전거는 알루미늄 자전거
너의 왕십리에 맺힌 알루미늄 자전거
플라스틱 사랑에 맺힌 작은 플라스틱 인형, 손을 맞잡지 못하는
나의 알루미늄 자전거를 타고 강으로, 산으로, 섬으로, 해변으로
해변에서 자란 액상의 나무로, 나무는 물이 되고 물은 불이 되고
불 속에 남은 물질, 나의 아름다운 사랑, 왕십리에 가서, 불타지 못하는
나의 자전거가 떠난다 먼 곳으로 먼바다의 섬으로 뚝섬으로 밤섬으로 여의도로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해변의 생활자를 생각하며
자전거를 굴리는 나의 자전거, 바퀴가 없고 몸이 마디로 이루어진, 마디마다 석유가 맺힌, 그만큼 사랑하는, 해변에서 우리 같이 놀자, 나의 아름다운 살곶이 해변, 플라스틱 사랑이 자라는, 나의 꿈속 같은
나의 자전거는 알루미늄 자전거, 알루미늄으로 만든 알루미늄 자전거
내 듀랄루민 사랑처럼, 고무 지우개처럼 반복하는 나의
너의 왕십리가 멀리 해변에서 기다리고 있었어 자전거를 타고 자전거에 잔뜩 아름다운 살곶 이 해변의 밤섬, 밤섬, 밤이 돼도 너는 나의 알루미늄 자전거를 타고

김연필 I
2012년 《시와세계》 등단. 시집 『검은 문을 녹이는』이 있음.
—
2022년 1월호 신작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