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 저자 | 한우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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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나무를 베지 말아라
아버지는 북쪽을 보게 해달라고 했다
베지 말아라, 그래도 배나무는 베지 말아라
비료 공장이 저만치 서 있고 거기
가물거리는 남한강이 들락날락
별스럽게 새떼가 뒤덮여 가로거칠지라도
목행(牧杏), 유명(遺命)처럼
북향의 진달래가 드문드문 피는 그 곳
내가 13평짜리 공원묘지를 사들고 온 날
아버지는 편지를 써두라고 하였다
성천강은 잘 있겠지, 야윈 만세교를 더듬거려
꿈에 반룡산이 (젖꼭지라도 내)보이면 당장
치마대를 향해 편지를 날릴 거라고 했다
내가 갈 때마다
아버지는 흥건히 젖은 채 나와 있다
땀이 마르는 북쪽으로 가부좌를 틀고
내가 가기만 하면 아버지는
죽은 게 아니고 살아 있다
베지 말아라, 배나무를 베지 말아라
물 다음에 구름,
실향 다음에 아버지
북쪽에 살아 있을 셋째 형, 넷째 형
젖었거나 바짝 마른 누이들
까치발로 낯선 남쪽을 바라보고 있을까
물 다음에 구름,
자식 다음에 귀향
그들에게 아버지의 유언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배나무를 베지 말아라
배나무를 베지 말아라
구름이 좀 끼면 어떠냐 휘어지면 어떠냐
펄럭이는 깃발처럼 아버지는
북쪽, 하늘이라도 보게 해달라고 했다

한우진 ■
2005년 《시인세계》 등단, 시집 『까마귀의 껍질』 『지상제면소』가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