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 저자 | 임재정 | ||
|---|---|---|---|
나는 천천히 삽니다
가시 속에서 선인장이 꽃대를 꺼내놓는다
악어의 아가리 속에서, 손도 없이
밤의 농기구 창고 같구나, 오후는
돌아서다 이마를 찧거나 놀라 너를 꺼트려도 될 만큼
술잔에 어둠과 고요를 따르고
가을이라 부른다, 담쟁이가 이파리에 고인 물감을 다 엎지를 동안
일과 세 시간, 또는 8이 1일 때 3분의 1은 얼마일까
한동안 넘친 적 없는 그릇을 가끔 어두운 쪽으로 놓친다
씻다가 눈을 뜨면, 물속에 녹슬어 일렁이는 오십팔 량의 텅 빈 기차
그리고 나, 봉제선 하나 없는 물속은 무엇이 드나들어도 그만
선인장은 사막을 잊은 표정으로 조금 기울었을 뿐
블라인드를 흔들 수 있다면 무엇이든 손이라 부르기 시작한다

임재정 ■
2009년 《진주신문》 가을문예 등단. 시집 『내가 스패너를 버리거나 스패너가 나를 분해할 경우』가 있음.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20년 12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