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 저자 | 최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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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벽암록(碧巖錄)
자신(自信)을 못 믿는데
어디서 자신(自身)을 찾겠나
청사(廳舍)와 의사당(議事堂)의 부조리나 채굴하려다
속아온 길
구만리(九萬里)
날마다 수염을 깎고
베고 잤던 무릎에다 대못을 치네
저를 잃어버리고도 저리 말짱한
물그림자에게만이라도
제대로 보이고 싶어서
천년 바람의 가야금 줄도 실은
몹쓸 인종사(人種史)처럼 소용없는 것
어떻게 걸어왔는가를 고백하라면
한나절은 말할 수 있지
그게 설혹 구만리 허황(虛荒)일지라도
변명이란 나를 속여 온 나의
절반의 절반에도 못 미칠 얘기
아직은 멀쩡한 두 주먹으로
머리 쥐어박으며 걸어가다
옛 스승들처럼 홀연히 증발해버린다 해도
세간(世間)에서의 울화(鬱火)를
어찌 우화(寓話)였다 말하지 않을 수 있으리
나를 지나오고 있던 나를
눈 뜨면 솟아 있는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잔소리나 들으며
못 박힌 무릎 절뚝이는 오늘을
아, 그러니 실패는 내 어머니가 아니셨네
이번 생은 성공했다 할 수 없겠으니

최준 ㅣ
강원 정선 출생. 1984년 《월간문학》 등단. 1990년 《문학사상》 시, 1995년 《중앙일보》 시조 당선. 시집 『너 아직 거기서』 『개』 『나 없는 세상에 던진다』 『뿔라부안라뚜 해안의 고양이』 등이 있음.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9년 05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