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 저자 | 박신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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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다
첫눈부터 양날을 세운 눈보라다, 지금 골목 담장에 목을 내놓은 장미는 돌아가지 않았다 망가진 것은 장미가 아니라 12월 첫날이다 붉게, 도착하자마자 떠났던 애인의 오래전 칼자국처럼 욕설처럼 더 붉게, 지금이라는 곳에는 뭐든 몰래 녹음하고 먼지까지 찍어 올리는 소음들이 눈송이처럼 자욱하다가 녹는다, 녹아 사라지면서 발가벗는다 남김없이 붉게, 누가누가 더 검붉게 얼룩져 더러운 몸인지 느닷없이 광장에 세워져 억울한 원죄처럼 불현듯 쥐어진 방아쇠처럼 끝까지 붉게, 아직 지지 않은 꽃잎은 또 얼마간 얼어붙는다, 첫말부터 새빨갛게 갇힌 고드름 속이다
첫아이 탯줄을 끊을 때 울리던 가위 소리,
막 도착하면서 붉다

박신규 ㅣ
남원 출생. 2010년 계간 《문학동네》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그늘진 말들에 꽃이 핀다』가 있음.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9년 01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