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 저자 | 박순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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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어디서부터 시작할까요
버린 것부터
비워서 아쉬운 것까지
아니면,
짧은 해를 지나쳐 긴 해 아래
애정 없는 포옹은 어떠한지요
나는 죽은 낱말을 채취합니다
마치 삽목에 실패한 온도 같습니다
고장 난 잔디깎이에서부터
자루가 부러진 삽과 얼어 죽은 나무
열매를 거부하는 뿌리까지
썩은 나날은 한데 모여 흙이 됩니다만,
도무지 맘에 들지 않는 삶은 어떡할까요
나는 위독한 시간을 접붙입니다
마치 개킬 수 없는 빨래 같습니다
늦게 도착한 초록에서부터
예정에도 없는 고된 일까지
죽은 새를 묻어주고 잠잠합니다만,
아직 완성된 그림을 걸어 둘 벽이 남아 있어서
견딜 만합니다
공교롭게도 가장 쓸쓸할 때
평정이 찾아옵니다

박순호 ■
2001년 《문학마을》 등단. 시집 『헛된 슬픔』 『승부사』 『너의 은유가 나를 집어삼킬 때』 등이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