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 저자 | 고진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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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종이 위에 상처를 올려놓다
ㅡ 시 치료 1
홀로 남몰래 앓는 신음소리는
아무리 작아도 결국
심장을 산산조각 내는 법이니
슬픔에 언어를 주라!는 옛 시인의 말을 따라
큰 상처 받아
은결든 날이면
원고지에 시를 긁적인다네
그냥 내버려두면
크게 덧날 내 안의 상처 들여다보며
현란한 수식도 생략한 채
쌍 시옷 섞인 육두문자 마다하지 않고
솟구치는 분노와 슬픔을
한 편의 시로 표현하고 나면
상처 입은 소나무가 제 몸의 송진을 흘려
스스로를 치료하듯
내 욱신거리는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날선 언어들이 나를 아물게 해주기도 한다네
참 나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때로 내가 나를 밟고 가듯이
나를 괴롭힌 상처의 아픔을
내 몸 살리는 영약 삼아
앞으로 나아가기도 한다네
그렇지만 흰 종이 위에 상처를 올려놓는
시 쓰기가 만병통치는 아니라네
그냥
저 벙어리 침묵 속으로
고요히 잠수하는 것이 나를 아물게 해줄 때도 있다네

고진하 ㅣ
1987년 《세계의문학》 등단. 시집 『프란체스코의 새들』 『수탉』 『명랑의 둘레』 등이 있음. <영랑시문학상><김달진문학상> 등 수상.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9년 12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