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사의 시선
 
공시사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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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최지온 

 

 

 

                           

수박의 내부

      

  

       

      

  흘러내리는 일. 그것은 누군가의 뒷모습을 잊어간다는 말. 날씨 같은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어떤 말도 건넬 수가 없어서 그냥 본다. 그냥이라는 말이 한가롭게 흘러 다닌다. 볼 수 없는 것들은 안개처럼 궁금하다. 속물처럼 흘러내릴 걸 알고 있었잖아요. 안개 속에서 수박처럼 푸른. 어머니, 왜 저한테 그러셨어요. 머리통만 한 수박이 박살 난다.

 

  흔들린다. 눈동자가 접힌다. 나는 접힌 곳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배운다. 흔들리는 모든 것은 부드럽다. 그것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깨지는 게 오로지 선택뿐이겠니. 네네. 그렇고 말고요. 그렇고 그런 것들이 접힌 채로 수박을 먹는다. 주먹을 쥔 채 엄지를 치켜세운다. 엄지가 송곳처럼 뾰족해지면 몸을 찌른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년. 그럴 리가요. 피를 다 빼갔잖아요. 불 꺼진 유리창을 보세요.

 

  우리는 언제부터 아팠던 걸까. 그건 유리창을 가릴 게 없었기 때문이다. 유리창은 정직한 수박이다. 수박씨를 버리는 건 아무 때나 가능하니까. 입 주위를 닦아주며 서로를 꼭 안고 수박을 깬다. 사람들이 깨뜨리기 전에 깰 수 있는 건 다 깨뜨리자. 다행히 우리의 유리창은 수박씨를 아니까.

 

  어떤 수박은 명랑한 소리를 낸다. 그러면 나는 한없이 풀어져 수박을 들고 집으로 들어온다. 대문 밖에 너무 많은 수박들, 깨지는 소리에 접힌 몸을 편다. 접힌다는 건 순서대로 차곡차곡이라는 말, 지나가는 사람들이 차곡차곡 수박씨를 던진다. 방안에는 수박씨가 가득하다. 그제야 우리는 유리창을 가려줄 무언가를 기다린다. 풀어져야 가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서로의 입속에 있는 수박씨를 꺼내주며 머리를 쓰다듬자 우리는 정말로 수박이 된다.

 

 

 

 

  

 

 

                       

이해의 방         

        

       

     

     

  누군가의 손끝이 닿을 때마다

  

  앓는 소리를 냈다 이렇게 아플 때까지 왜 참았냐며 손을 잡던 너를 떠올렸고

  계속해서 손끝을 따라가면 너의 세계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작은 구멍이 뚫린 침대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코만 내밀 수 있었다 숨쉬기도 전에 배가 고팠다

 

  몸속의 길이 막혀 있다고 말했다 자연스럽지 않은 말투였다 나는 입이 막혀 대답을 못하고 너는 어떤 말을 할지 궁금했지만 끝내 아무 말이 없었다 아픔이 고이지 않는 곳을 잠시 떠올렸다

 

  고개를 돌려 봐야 목뼈가 아플 뿐이야

  그 말을 하던 엄마의 목은 언제나 옆을 향해 있었다

 

  나는 그렇게 아픔을 이해하기로 했다 너는 팔꿈치로 등을 꾹꾹 누르며 너를 누르고 있을 또 다른 누군가와 떠들고 있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이국어가 내 등에 닿고 있었다 피로한 손끝으로 만들어지는 세계를 묻고 싶었지만 이국어가 아닌 나의 말은 너에게 닿지 않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어두워진다고 생각했다 몸을 뒤집고 너의 표정을 보고 싶었다 너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너는 언제부터 고여 있었던 걸까

 

  눈을 감으면 방은 더 예민해지고

 

  시작을 모르니 끝도 모를 거라는 생각 때문에

 

  너의 손을 잡을 수 있었다

  밖은 이미 어두웠다

 

  방을 나서는 것이 무섭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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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온 l

2019년 《시로여는세상》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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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호 공시사의 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