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김도경 | ||
|---|---|---|---|
은유의 요새
눈의 결정이 우주의 결과와 닮았어요
엄마의 손을 놓지 않는 아이와
아이의 손을 연결해내는 엄마는
거짓말처럼 거대해지자고
우리라는 이름으로 약속해요
*
검은 숲에서 빛나는 것을 찾아내듯이
바람 뒤에
깊어지는 그림자를 우리의 신체로 사유하듯이
우리는 뱃속과 바깥을
우리는 서적과 낭독회를
대화하고 있다
많은 당신과 수많은 당신에게
거대해지고 있다
바람이 지나가지 않는 곳이 없듯이
인사한다
메아리로서의 나는 엄마의 발화가 되고
시라서
시작되는 것을 믿고 있다
우리의 시간이 어제도 있었던 것처럼
과거 안에서 빛을 찾아낼 수 있다는 듯이
회상이 만들어낼 거야
숲의 끝이라 믿어지는 곳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
내 태몽은 태양에 너무 가까이 가다 사라지던 아이였다
엄마는 내 탄생과 함께 자살을 염원했고
불을 붙이는 소리가 내 울음으로 은유되고
가스의 냄새가 내 탯줄을 자르던 냄새로 환유됐다
소리 없이 운다는 건
소리를 지르지 않겠다는 게 아니야
이 공간에서는 빛이 없지만
멀리서 우리를 봤을 때는 빛의 소유지일 수도 있어
과거의 우리가
지금의 우리에게
죽음의 우리가
삶의 우리에게
유리컵이 깨지면 온 가족이 모였다
조각, 조각 깨진 것 중에
가장 날카로운 조각이
서로를 이어주는 끈 같은 걸 끊어 줄까 봐
탯줄은 왜 잘라냈어,
그러게
거짓말이 아직도 우리를 이어주고 있잖아
*
가짜와 가짜가 만나면 진짜가 둘이 된다는 가사*처럼
가짜 주머니를 매고
숲을 걷고 있다
숲에 숨어 있는 아이에게
가짜를 하나 주고
가짜를 둘 주고
진짜를 만들어내는 사랑 같은 거
진짜를 믿게 하는 포옹 같은 거
눈이 오면
진짜를 믿어 보자고
겨울이 우리의 탄생이었다고
가짜의 장난은 어둠 속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한 번 더 속아본다
* 우원재 〈또〉 가사 중

김도경 l
2021년 《아시아》 등단. 시집 『숨과 숲의 거리』(심훈문학상 수상 시집)가 있음. 2022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
—
2023년 11월호 공시사의 시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