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사의 시선
 
공시사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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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명윤 

   

  

 

 

                             

억새들  

 

                        

 

          

   

  모처럼 가벼워진 세상의 발들이

  구름 위를 걷고 있었고

  한 떼의 바람이 기병들처럼 키를 훌쩍 넘어

  풀숲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울음은 시야가 탁 트인 언덕에서

  서식하고 있었는데

  언덕에서는 울음도 마냥 즐거운 놀이가 되었다

  온종일 뒹굴어도 아이들처럼 지치지 않는

  울음의 자세가 부러웠다

 

  뚝, 하면 금방 그칠 것 같은

  순하고 부드러운 줄기가 좋아

  사이를 비집고 가만히 억새로 서자

  순간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울음은 출렁이는 긴 악보를 가지고 있었다

  누가 울음을 연주하는지 왜

  모두들 울음을 따라 우는지 몰라도 좋았다

 

  우는 사람 옆에 우는 사람,

  서로를 기댄 등이 따뜻해 보여 좋았다

 

  실컷 울고 나면 하늘은 맑아지고

  계절은 또 한 번 바뀔 것이다

 

  나는 울음을 타고 훨훨

  세상 밖으로 날아갔다

 

  울음은 얼굴 전체가 깃털이었다

 

 

 

 

  

 

 

                                

안녕 하셉                               

                   

 

 

 

    

  출근길 두 팔을 힘차게 흔들며 지나가는

  길 위의 하셉, 안녕 하셉

  하셉은 듣지 못한다

  나는 창문을 닫고 중얼대니까

 

  어느 먼 나라에서 온 한눈에도

  건강한 하셉 턱수염이 멋진 하셉

 

  오늘도 어제처럼 멋진 작업복을 입고 걸어가는

  길 위의 하셉, 안녕 하셉

  하셉은 알지 못한다

  내가 만든 이름이니까

 

  한동안 하셉이 궁금했다 출입국사무소

  점심 메뉴가 궁금한 것처럼

 

  몸이 아파도 하셉은 울지 않을 것 같다

  울어도 소용없겠지

  하셉은 너무 흔한 이름,

 

  저기 씩씩하게 걸어오는 하셉

  얼굴이 바뀐 하셉

 

  최선을 다해 걷는 하루는 어떤 감정일까

  하셉의 출근길을 번역할 수 없다

  출근길은 너무 멀고 하셉은 계속될 테니까

 

  창문 너머 사는 나라

  길 위의 하셉,

 

  안녕, 우리들의 하셉

 

 

  

 

 

 

 

 

 

 

 

 


 

공시사의시선-이명윤.png

이명윤 I

2006년 〈전태일문학상〉 당선, 2007년 《시안》 등단. 시집 『수화기 속의 여자』 『수제비 먹으러 가자는 말』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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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호 공시사의 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