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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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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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낸곳 문학의전당

출간일 2022년 7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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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동네 시인선 180.

 

2019년 《경상일보》 신춘문예에 시조로 등단한 이희정 시인의 첫 번째 시집.

 

'나'라는 주체와 '세계'와의 교감이 성찰을 통한 삶의 깊이로 승화된 이 시집에는, 시인의 오랜 습작의 여정과 역량이 고스란히 농축되어 있다. 그것은 ‘고양이 보법’으로 그려낸 절묘한 시의 점묘를 통해서다. 시인의 정밀한 눈은 내면이나 사물 자체만이 아니라 취업 준비생, 공공근로 노인, 어렵게 사는 가족, 떠돌이 잡화상 등 세상의 아픈 곳에 두루 닿고 있는데, 이는 시인이 예각화된 시각 못지않게 남다른 온정을 지녔다는 표징이기도 하다. 시인이 말한 대로 그가 “지상 어디에도 없는” 단 한 시인, 단 한 사람이길 기대하고 응원하게 되는 시집이다.

 

 

 

 

 

 

고양이 보법으로 찍은 점묘

 

시인이 살금살금 다가옵니다. 고양이 걸음입니다. “발자국도 없이 우울만 찍고 다녀요”(「고양이 보법」)라 말하죠. 우울의 근원은 아마 “겨울 속”이거나 “빈 가지”일 텐데요, 여름 속이거나 무성한 가지였다면 그런 걸음걸이는 군더더기입니다. 표시 내고 가서 느긋하게 먹고 나오면 그만일 테니까요. 그러나 시인은 “밥그릇 물어뜯는 개들을 / 무심하게 지나요”라고 말합니다. 다 먹고 나서도 성에 차지 않는 식탐일 듯한데, 고양이는 그런 곳에 눈을 두지 않습니다.

시인이 시를 쓰는 자리가 바로 거기가 아닐까 합니다. 늘 무언가를 갈구하는, 그래서 허기질 수밖에 없는, 갈빗대가 보이는 고양이 한 마리가 앞을 지납니다. “흘린 말 줍는 놈이 임자, / 보법 아닌 묘법이죠”라고 무심히 말하는 가운데 시인의 비책(祕策)이 들어 있습니다. 흘린 말을 주울 수 있게 되기까지, 남모르게 슬쩍 취할 수 있을 때까지 숱한 고비들이 있었겠고요. 또, 고비가 높으면 골도 깊겠고 말도 깊겠지요, 아마. 그래요, 시인의 고양이 보법을, 아니 ‘묘법(猫法)’을 따라가 보기로 합니다.

 

― 이강엽(대구교육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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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벼랑마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흘리고 간

0.1그램의 깃털이

추락하는 나를 기어이 붙들어 주었다.”

 

ㅡ 「시인의 말」 中

 

 

 

 

  내시경의 역설

 

 

 

  가장 좁은 통로로 가장 깊게 들어왔다

 

  광경이 아니라

  전망이 기다리는

 

  누구든 부분을 사는 것

  전부란 없는 거야

 

  폴리스라인을 뚫고 결핍을 조준한다

  모종의 단서가 숨어 사는 지층 아래

 

  소심한 갈망을 본다

  전지적 시점으로

 

  이것은 비극을 엿보는 한 방식이다

 

  수직의 질문이

  징후를 파고들면

 

  막다른 무의식의 말

  아파도 아프지 않다

 

 

 

 

 


  비, 창

 

 

 

  창문을 열어두고 베토벤을 듣는데

  자꾸만 빗방울이 선율을 밟는다

 

  마음이 빗소리라면

  비는 계속돼야지

 

​  내리는 추억은 칠월의 창을 흐르고

  어제가 사는 창에 강물을 걸어두고

 

  건반을 헛디딘 잃다를

  잊다로 듣는 밤

 

  잠시 내 것이다가 잊거나 잃게 된 것들

  다시금 잇는 게 빗물의 일이라면 

 

  아직은 닫지 못하지

  젖은 창의

  음표 하나

 

 

 

 

 


  아침, 포구를 지나다

 

 

 

  햇살이 실눈 뜨는 집어등 쪽빛 너머

​

  야간 조업 어선들 밤새 젖은 몸을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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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닷새 이른 잠을 터는 금발의 아침 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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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풍에 모가 닳은 비릿한 간판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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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부에 성긴 그물들 고단함을 벗는다

​

  짜디짠 손길로 퍼 올린 바다가 내어준 길

 

 

 

 

 

 


  일요일 오후

 

 

 

  쇠라의 붓끝이 휴일 세 시를 지날 때

 

  점묘로 봉긋한 탕녀의 치마처럼

  식탁 위 지루한 튤립은

  하품을 하고 있다

 

  색깔을 섞지 않는 그랑자트 섬에서

  원두를 내리며 전쟁을 듣는 것처럼

 

  센강과 우크라이나는

  아무 상관이 없다

 

  오후는 식어가고 접방 시인은 말했다*

  비탈 집 난간에 돼지감자꽃이 피었다고

 

  한강변 무더기로 핀 꽃이

  죄다 남 일이라고

 

 

  

  *윤중호(1956-2004) 유고 시전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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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ㅣ 이희정

 

경남 김해 출생.

대구교육대학원 문예창작 스토리텔링과정 졸업.

2019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조 등단.

〈더율〉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