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정재분 | ||
|---|---|---|---|

펴낸곳 (주)달아실출판사
출간일 2022년 7월 30일
인간은 자신을 어느 별에서 온 존재로 이해하고자 했다
고향을 묻듯 너는 어느 별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정재분 시인의 두 번째 산문집.
2005년 《시안》으로 등단한 이래 두 권의 시집을 통해 부조리하고 불완전한 세계를 “응시와 투사”로 보여주었던 시인은, 이번 자신의 두 번째 산문집에서도 집요하게 이 불완전하고 부조리한 세계를 집요하게 성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게 시인이 투사해낸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너무나 익숙했던 사물들, 이름들에 균열이 생기고 틈이 생기는 것을 눈치채게 될 것이다.
이번 산문집은 어쩌면 익숙한 일상의 문장에서 조금ㅡ어쩌면 조금 더 벗어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익숙한 언어만으로는 불가해한 이 세계를 깊이 들여다보는 한 방편이 될는지도 모른다. 독자들은 익숙했던 세계의 균열 사이로 난 틈을 통해 한 차원 다른 세계의 입구로 진입하는 안내를 받게 될 것이다. 시인이 독자에게 덤으로 주는 선물이다.
장미와 여우가 나누는 인사말, 혹은 ‘있음’의 고고학
비약을 가능하게 하는 그것은 수사학과 상징, 전설과 신화 그리고 불립문자이다. 더하여 기호와 그림자로 드러나는 어법은 너머의 세계를 홀로그램으로 얼비친다. 물질의 현현인 things의 본질은 벌거벗은 임금님으로 이념과 이해의 눈으로 수렴된다. 들음으로써 받아적을 수 있었던 문장은 혼잣말을 사랑했다. 어릴 적 처마 밑에서 빛과 그림자가 대련하는 앞마당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어린 동공에 맺혀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 피사체가 문장이 되었을 것이다. 공기의 방식을 선호하는, ‘있음’의 세계를 항해하는 하얀 쪽배는 아직 멈추지 않았다.
― 「작가의 말」 부분
“골똘해진 자의식이 외출을 서두른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그리고 싶어 하는
일종의 크레파스다”
ㅡ 「작가의 말」 中
개똥벌레로 명명되는 손톱만 한 이 생명체는 성충이 되면 물만 먹으며 일주일 살다 죽는, 도무지 속된 구석이라곤 없다는 사실이 늘 간과된다. 그러함에도 백주대낮은 이 우아한 생명체에게 여섯 개의 다리가 있음을 여실하게 드러냄으로써 한낱 벌레에 지나지 않음을 명명백백하게 만든다. ■ 10-11p.
되돌아보니 시간에 묶여 있는 한쪽 다리가 부어올랐고 자유로운 한쪽 다리가 시간과 싸우느라 헛발질을 해댔다. 기실 시간에 끌려다닌 생채기가 수두룩하다. 시간 앞에 털썩 무릎을 꿇는다. ■ 16p.
문양의 세계가 볼륨을 높입니다. 물질로의 인간이 면밀하게 설계된 지성의 산물이라고 소리없이 아우성을 치는 듯합니다. 우주와 인간은 결코 우연의 사생아가 아니라고 말이지요. ■ 21p.
사정이 이럴지라도 사랑은 지표 삼을 수밖에 없는 망망대해에서의 등대다. 인간의 존엄성이 발생하는 지점이며 모든 부류를 소통의 장으로 불러모으는 용기이다. ■ 24p
인디고로 염색한 청바지는 시간이 흐르고 입는 횟수에 따라 날염되어 느낌이 달라진다. 청바지의 블루는 추상적이고 하늘, 대기, 우주, 물과 같은 무한한 이미지를 담지한 색깔이다. ■ 34p.
둥근 것은 중력을 표방한다. 하늘의 별들은 둥글다. 원은 법과 질서의 메타포이다. 둥글어야 무한의 시간을 공유할 수 있다.
■ 44p.
고래(古來)로 수천 년 동안 어머니와 자신을 이어주던 생명줄의 자국을 타인에게 노출하는 일은 그런 이유로 감추어야 하는 것으로 여겼을 것이다. 고래로 전해온 수많은 금기가 깨진 이십 세기, 배꼽의 금기도 깨졌다. 이제 배꼽은 은둔의 시간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 47p.
자연은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지 않는다. 은은한 달빛 어법을 구사하는 것인데, 특히 ‘대낮을 사는’ 사람의 귀엔 들어왔다가 곧바로 나가버리는 외국어이다. ■ 62p.
세계는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지 않는다. 자연은 언어 이전의 생태로 말한다. ‘그것을 간파하고 마다마다에 부응하는 것이 인간의 몫이다’에 밑줄을 긋는다. 지난해 힘차게 꽃을 피운 본연에서 태어난 새싹들이 어찌나 반갑던지, 그러나 고것들이 뿌리를 내린 곳이 파쇄석 틈새였다. 기특한 생명력을 가만히 들어올려 옮겨 심었다. 당귀(當歸)가 돌아왔다. ■ 70-71p.
사람의 인중은 더듬이에 해당하는 감각이 내재된 듯하다. 들숨과 날숨이 드나드는 숨결이며 먹이를 물어뜯는 이빨을 감추고 있는 윗입술에 연결된 그것의 호칭은 인중(人中)이다. 사람의 중심이라는 말이다. ■ 73p.
소리 없는 소리를 듣고 번역해내야 하는 것이 시인에게 부여된 소임이 아니겠는가. 시인의 직관은 대상의 소리 없는 소리와 눈으로 본 감촉과 입체적 시건으로 포착된 순간을 함축된 언어로 결박한다. ■ 80-81p.
하지만 뿔은 지칠 줄 모르는 이상주의자처럼 고고하다. 우주의 정기를 담아내도 있으며 상상력을 동원하자면 우주정신의 원소가 깃들어 있을 듯하다. 추상적인 뿔의 위용은 미래지향적이다. ■ 97-98p.
주의나 주장이 없는 모든 경계를 허무는 어둠이 조용히 내리면 객관적 세계에서 주관적 세계로 전환이 일어난다. 고유한 자기에게로의 회귀의 문이 열린다. 낮에게 대여해주었던 제 존재를 되찾아오는 시간이다. ■ 165p.
어둠을 오염시키는 불빛이 사라진 캄캄한 산중에 어느새 호랑이가 어깨 위에 올라타고 있다. 그놈의 호랑이 참으로 묵직하구나! 호기를 부려보는 시인의 감성이 현대인의 초상일 듯싶다. ■ 191p.

저자 소개 ㅣ 정재분
2005년 《시안》 등단.
시집 『그대를 듣는다』 『노크 소리를 듣는 몇 초간』,
산문집 『침묵을 엿듣다』가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