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정끝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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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역사
하늘도 땅도 없고 낮도 밤도 없으니 계절도 없고 날도 없던, 날 아닌 날에
해와 달은 한 몸으로 사랑했을 거야
전자레인지에서 달걀이 퍽! 하고 터지듯, 빙고 아니 빅뱅! 세상에 느닷없는 안팎과 앞뒤와 위아래가 생겼다는 그때
해와 달도, 낮과 밤으로 헤어졌을 거야
해는 해대로 절박해져서 눈길이 닿는 데마다 이글이글 달의 행방을 찾고, 달은 달대로 혼자라는 슬픔에 해를 찾아 가만가만 저리 떠돌았을 거야
애가 닳은 해는 달과 깃들던 데마다 달과의 추억을 부려놓았는데 그 추억이 깜깜한 밤이 되면 별이 되어 저리 반짝반짝 빛을 내는 거래, 뜨거운 해 마음에 제 마음을 잇대느라 달은 또 밤새 별들 곁을 떠나지 못하는 거래, 네가 말했을 거야
뺨에 뺨을 잇던 질주의 순간을, 심장에 심장을 잇던 폭발의 순간을, 잇고 잇대며 잊지 못해 서로를 찾아 떠돌며
서로의 추억을 별자리에 새겨놓았을 거야
별이 사라지지 않는 건 해와 달의 사랑이 끝나지 않아서래, 그래서 오늘도 별이 빛나는 밤에 어느 별을 읽은 사람이 그 별을 같이 읽은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거래, 내가 말했을 거야
갸름한 속눈썹에 별 하나 오래 매달려 내내 환했으니
너는 너대로 그렁였을 거고
나는 나대로 일렁였을 거야

정끝별 l
1988년 《문학사상》 등단. 시집 『자작나무 내 인생』 『흰 책』 『삼천갑자 복사빛』 『와락』 『은는이가』 『봄이고 첨이고 덤입니다』 『모래는 뭐래』가 있음. 〈유심작품상〉 〈소월시문학상〉 〈청마문학상〉 〈현대시작품상〉 〈박인환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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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호(VOL.123)
